팔공산 은해사(서비스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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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 은해사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 팔공산 은해사는 신라 헌덕왕 원년(809), 혜철국사가 민족의 영산(靈山) 팔공산에 창건한 해안사(海眼寺)에서 시작된 절이라고 한다. 해안사에서 은해사로 절 이름을 바꾸게 된 경위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전하지만, 고려시대 어느 때 은해사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은해사는 1515년(중종 10) 인종(仁宗, 재위 1544~1545)의 탄생과 함께 태실을 수호하는 사찰로 봉해지고 인종이 등극한 1545년 대대적으로 중창된 이래, 1,20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법등(法燈)을 이어오고 있다. 은해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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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군 은해사사적 목판인출본
은해사의 역사를 정리한 자료 가운데 중 시기적으로 가장 이른 사적기는 영파 성규(影坡聖奎, 1728~1812) 스님이 편찬한 『영천군 은해사 사적(永川郡銀海寺事蹟)』(1798)이다. 영파 스님은 화엄, 선, 염불에 해박하였고, 은해사에 주석하면서 경상도 지역에 화엄학 종지를 펼친 학승이었다. 사적기 본문에 의하면 스님은 61세인 1788년 무렵부터 은해사 운부암에 머물렀으며, 1789년 겨울 사적기 말미에 직접 게송을 붙여 절을 세운 인연과 대대로 불사를 계승해온 스님들의 업적을 찬탄하였다. 또한 은해사의 시작을 신라 헌덕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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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해사 중암암의 설화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옛날부터 구전되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가운데 은해사 중암암과 관련된 설화는 모두 2건이 확인된다. 김유신과 중악석굴 은해사의 산내 암자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중암암(中巖庵)에 이르는 길은 마치 요새의 석문처럼 생긴 자연 바위를 거쳐야 한다. 이 바위 덕분에 ‘돌구멍 절’이라는 이름도 붙었다. 중암암은 9세기경에 세워졌으며, 절 뒤에는 천연 석굴이 있다. 석굴은 2층으로 형성된 것으로 넓이는 겨우 한 사람이 들어갈 정도이나, 특이한 구조로 엄숙하고 장엄한 느낌이 들어 수도처로서 이상적이다. 속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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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해사 창건주 혜철국사
1943년에 은해사에 건립된 〈팔공산 은해사 사적비(八公山銀海寺事蹟碑)〉에는 은해사의 시작을 신라의 혜철 국사(惠哲國師) 스님이 809년에 창건한 해안사(海眼寺)라고 하였다. 혜철 국사, 즉 적인 선사(寂忍禪師, 785~861) 스님은 신라 말에 활동한 선사(禪師)이자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동리산문(銅裏山門)의 개조(開祖)이다. 스님의 제자는 도선 국사(道詵國師, 827~898), 광자 대사(廣慈大師, 864~?)를 포함하여 수백 명이 넘었으며, 제자들은 스님의 선풍을 계승하여 동리산문을 형성하는 등 신라 말 선풍을 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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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 쾌선과 기기암의 염불결사
기성 쾌선(箕城快善, 1693~1764) 스님은 「청택법보은문(請擇法報恩文)」, 〈염불환향곡(念佛還鄕曲)〉을 저술하고, 1764년 동화사(桐華寺)의 『염불보권문(念佛普勸文)』 판각을 주도하는 등 조선 후기의 염불 수행을 크게 진작 시켰던 스님이다. 스님의 행적은 〈기성대사비(箕城大師碑)〉와 「기성쾌선 선사행장(箕城快善禪師行狀)」의 내용을 통해 살필 수 있다. 기성 쾌선 스님의 속성은 류씨(柳氏)로, 1693년 칠곡부(漆谷府)에서 태어났다. 스님은 13세에 팔공산 송림사(松林寺)에 들어갔다. 14세에 민식 대사(敏湜大師) 스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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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
조선시대 은해사는 학승(學僧)과 문인(文人)들이 교유하는 공간이었다. 특히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의 친필 편액(篇額)이 다수 남아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편액은 일반적으로 건물의 이름을 걸어 놓는 표식이자 전각의 위엄과 권위를 상징하기 때문에 왕가의 인물을 비롯하여 당대의 이름난 서예가와 고승 등의 글씨가 주를 이룬다. 은해사의 혼허 지조(混虛智照) 스님이 1862년에 작성한 「은해사 중건기」와 1879년 이학래(李鶴來)가 쓴 「은해사 연혁변」의 내용을 통해서도 당시 은해사에 김정희의 편액이 남겨져 있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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괘불도와 괘불지주
괘불도(掛佛圖)는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사찰에서 야외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제작된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괘불도는 평소에는 나무로 만든 긴 상자(櫃)에 담겨 보관되고, 영산재(靈山齋)나 수륙재(水陸齋) 등의 불교 법회나 의식을 거행할 때 야외 마당에 마련된 의식 도량으로 옮겨진다. 이때 대형의 괘불도를 펼쳐 고정하고 세우기 위하여 긴 장대와 이를 지지하기 위한 지주가 필요하다. 긴 장대를 괘불대(掛佛臺)라 하고 긴 장대를 고정하고 받치는 부분을 괘불지주(掛佛支柱)라고 한다. 괘불대는 주로 나무로 제작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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