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송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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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유산으로 본 송광사의 역사
전라남도 순천 송광사는 신라 말 혜린 선사가 창건한 이래,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1158~1210) 스님이 정혜결사 도량으로 중창하며 16국사를 배출한 승보사찰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부휴 선수(1543~1615) 스님과 그 제자들이 교학 전통의 법맥을 세웠으며, 근현대 효봉(1888~1966), 구산(1909~1983) 스님이 지눌 스님의 ‘목우가풍’을 계승하며 한국 사상사의 큰 줄기를 이어왔다. 1969년 선원‧강원‧율원을 두루 갖춘 총림(叢林)으로 승격된 송광사는 오늘날까지도 참선과 경전, 계율을 공부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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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 기록유산의 유형과 현황
순천 송광사에는 역사가 오래된 만큼 다양하고 풍부한 문화유산이 전하고 있다. 그중 기록유산은 고려시대 문헌에서부터 조선시대에 판각한 경판과 세월의 흐름 속에서 사찰 곳곳에 남아 송광사의 역사를 증명해주는 현판과 금석 자료, 나아가 근·현대 사진과 엽서에 이르기까지 고려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많은 자료들이 전하고 있다. 송광사 기록유산의 분류 유네스코에서는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을 발굴하여, 세계유산, 인류무형문화유산, 세계기록유산의 각 분야의 유산을 등재하여 보호·보존고자 한다. 이 가운데 세계기록유산은 등재 과정으로 최적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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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 기록유산의 아카이브 구축
승보종찰 송광사에는 다양하고 의미 있는 많은 기록유산이 전해지고 있다. 2006년 국가유산청과 재단법인 불교문화유산연구소(구. 불교문화재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전적류와 목판류를 중심으로 문서류, 서간류, 금석문류 등 약 398종의 다양한 기록유산이 현존하고 있다.문화재청‧대한불교조계종유지재단 문화유산발굴조사단, 2006, 『한국의 사찰문화재』, 문화재청‧대한불교조계종유지재단 문화유산발굴조사단. 이 가운데 전적류와 목판류에는 가치가 높고 희귀한 것이 다수 전하고 있어, 송광사의 기록유산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송광사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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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의 고려시대 문서
혜심고신제서 ⓒ송광사성보박물관 / 고려(1216) / 34.5×381.5㎝ / 국보 1890년(고종 27), 그해 서른이 된 금명 보정(1861~1930) 스님은 보조암(普照庵)에서 건당(建幢)하였다. 건당이란 스승으로부터 법통(法統)을 이어받는 불교 전법의식으로, 그해부터 스님은 송광사에 주석하게 되었다. 이듬해인 1891년 봄에 보조암을 새로 수선하던 중 스님은 불사를 위해 들린 송광사 창고에서 먼지 쌓인 궤짝 안에 든 오래되고 낡은 뭉치의 문서를 발견하였다. 바로 고려시대 문서였다. 금명 스님의 저서인 『다송문고(茶松文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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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진기한 고려판 경소의 발견: 대반열반경소
대반열반경소 ⓒ송광사성보박물관 / 고려(1099) / 37.0×33.6㎝ / 보물 /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바로가기 / 송광사에 현전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고서(古書)는 고려 대각국사 의천(義天, 1055~1101)이 간행한 고려 교장(敎藏) 판본이다.고려 제11대 왕인 문종(文宗, 1047~1082 재위)의 넷째 아들로 태어난 대각국사 의천은 고려에서 경(經)‧율(律)‧논(論) 삼장(三藏)을 집대성한 초조대장경의 판각이 완성되어 가던 무렵인 1073년(문종 27) 19세 때에 동아시아 학승들의 장소(章疏: 대장경의 주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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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캡슐이 열리다: 송광사 복장전적
송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 복장전적과 복장유물 ⓒ송광사성보박물관 사찰에 모셔진 불상이 신앙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불상 내부에 사리와 경전 등 여러 가지 불교적 상징물을 봉안하는 복장(腹藏) 의식이 먼저 이루어진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 제자들이 불탑을 조성하여 사리를 봉안하고 예경했던 것처럼, 불상은 복장 의식을 통해 생명력을 갖게 되고 신앙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복장물은 불교의 신앙적 상징을 담고 있는 동시에 복장된 경전과 발원문, 조성기는 수백 년 동안 묻혀 있던 역사를 새롭게 밝혀 주기도 한다. 복장은 개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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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 조선시대 인쇄 출판을 주도하다
한국의 사찰본 불교가 한반도에 전래된 이래 포교를 위한 불교 문헌의 인쇄는 점차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시기가 오래된 책들은 불교 문헌이 많은데, 전쟁과 자연재해로 많은 책들이 소실되었지만, 납탑공양(納塔供養)과 같은 불교 의식에 의해 탑이나 불상 안에 봉안되어 그대로 전해지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남북국시대의 문헌으로 신라의 『무구정광대다라니경』(: 742년 이전 간행)이 현존하며, 이것을 통해 국가와 사찰에서 출판 활동이 진행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고려시대에는 국가사업으로 대장경을 간행하였고, 조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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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과 왕생에 이르는 길: 왕생첩경도, 염불첩경도
「권수정업왕생첩경도」(왼쪽)와 「중봉화상보권염불첩경도」(오른쪽) 도판 ⓒ송광사성보박물관 조선(1781) / 79.2×39.5㎝ /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바로가기 / 조선시대에 불교는 왕실과 귀족 중심에서 서민과 부녀자들의 일상으로 깊숙히 퍼져나가게 된다. 서민들은 개인의 복을 구하고 원하는 바를 이루고자 간절한 마음으로 절에 가서 기도를 했다. 우리들의 할머니, 어머니께서 매일 불공을 드리러 절에 가시던 모습은 우리에게 따뜻하고, 일상적인 기억이다. 이러한 마음을 담은 그림으로 첩경도라는 것이 있다. 첩경도는 원하는 바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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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전, 경판을 봉안하다
송광사 화엄전의 경판 ⓒ송광사성보박물관 송광사의 화엄도량 조성 송광사 남쪽 진남문(鎭南門)을 나가면 흘러가는 냇물을 만나게 된다. 이 냇물을 건너면 산 아래 자리한 전각들을 볼 수 있다. 냇물을 건너 화장루(華藏樓)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화엄전(華嚴殿)을 중심으로 불조전(佛祖殿), 성산각(星山閣)이 양옆으로 위치하고, 동서 가장자리에 명성각(明星閣)과 월조헌(月照軒)이 자리하고 있다. 한국전쟁 이전 송광사의 모습 ⓒ송광사성보박물관 이렇게 사찰의 중심 경내에서 떨어진 곳에 별도의 전각을 세운 이유는 무엇일까? 17세기 초 송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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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을 그림에 담다: 화엄경변상도
송광사 화엄경변상도 ⓒ송광사성보박물관 조선(1770) / 281×255㎝ / 국보 / 송광사 대웅전 남쪽 계곡 건너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화엄전이 있다. 이 화엄전에 봉안됐던 국보 는 1770년 그려져 최근까지 화엄전에 봉안돼 있다가 박물관 수장고에 보관 중이며, 2022년 3월 다시 그린 모사본이 현재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현존하는 화엄탱 가운데 최고 걸작 는 2003년 2월 보물로 지정되었다가 2009년 9월에는 국보로 승격됐으며 공식 명칭은 ‘국보 순천 송광사 화엄경변상도’이다. 이러한 명칭이 붙은 이유는 『화엄경』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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