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굴암과 불국사
석굴암과 불국사는 1995년 12월에 한국에서 처음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두 유산은 창건자와 조성 배경, 지리적 위치 등이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2개년에 걸쳐 두 유산을 함께 살펴볼 예정이다. 1차 연도에는 등재 정보와 창건 배경, 석굴암석굴과 불상조각을 소개하고 관련 자료목록을 집대성하였다. 2차 연도에는 창건 이후 현대까지의 역사, 불국사의 석조유산과 불교건축 등을 살펴봄으로써 석굴암과 불국사의 세계문화유산으로서의 의미를 종합적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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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과 불국사의 세계유산적 의의
한국이 만든 세계 최고의 불교미술로 평가받는 석굴암과 불국사는 1995년 12월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함께 등재되었다. 두 유산은 인류사적인 의미가 있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Outstanding Universal Value) 부분에서 ‘창조적인 예술 감각과 고도의 기술로 만든 뛰어난 불교조각과 건축’의 사례로 인정받았다. 석굴암과 불국사는 신라 불교예술의 전성기였던 경덕왕(景德王, 재위 742~765)대에 재상 김대성(金大城, 700~774)이 기획하고 착공했으며, 그의 사후 나라에서 완성하였다. 현생의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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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성의 토함산 석굴암·불국사 창건
전생과 현세의 부모를 위해 절을 세우다. 석굴암과 불국사는 8세기 중엽 신라의 동악(東岳) 토함산(吐含山)에 세워진 사찰이다. 『삼국유사』에는 경덕왕대 재상을 지낸 김대성(金大城, 700~774)이 751년(경덕왕 10)에 전생의 부모를 위해서는 석굴암을 짓고, 현세의 부모를 위해서는 불국사를 조성하였는데, 774년에 김대성이 완성을 보지 못하고 죽게 되자 나라에서 불국사 공사를 마무리하였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한편 불국사 삼층석탑(일명 석가탑)에서 발견된 고려시대의 중수 문서(그림 1, 2)에는 불국사가 742년(경덕왕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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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 공간구성과 도상배치의 의미
건축적 특징과 상징성 경주 토함산 정상 가까이에 동향(東向)으로 자리잡은 석굴암은 일일이 가공한 화강암 석재를 정교하게 짜 맞추어 만든 석굴사원이다. 인도, 중앙아시아, 중국의 불교 석굴사원이 대부분 암반을 파고 들어가 조성한 자연석굴인 데 비해, 석굴암은 치밀한 계획에 따라 지어진 조립식 인공석굴로서 비슷한 예를 찾기 어려운 독특한 건축물이다. 석굴암은 주실(主室) 지붕을 돔, 즉 반원형의 궁륭식으로 축조하고 그 중앙에 연꽃 모양의 뚜껑돌을 얹은 점도 주목된다(그림 1). 일반적으로 다른 석굴사원들은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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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된 고전미의 완성, 正覺의 본존상
석굴암 원형 주실의 중앙에는 불좌상이 있다(그림 1). 석굴암 안의 유일한 불상이다. 석굴암 안에는 현재 38구의 조각이 남아 있지만, 불상은 단 하나이다. 위치도 원형 주실의 중앙에 자리하고 있어 우리는 이 상을 본존상이라 부르기도 한다. 물론 정확히 정중앙은 아니다. 중앙에서 약간 뒤로 물려 불상 앞면이 정중앙이 되도록 했다. 이 본존상은 38구의 조각 가운데 유일하게 환조로 조각했다. 나머지 37구는 벽면에서 도드라지도록 하는 부조로 새겼다면, 본존상만은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입체적으로 조각한 것이다. 그림 1. 석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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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상과 천부상
석굴암 원형 주실 벽에는 보살상 3구와 천부상(天部像) 2구가 있다. 보살상은 본존불상 바로 뒤의 십일면관음보살상과 각각 문수, 보현으로 추정되는 입구 양쪽의 상이고, 천부상은 입구 양쪽의 두 보살상 옆에 있는 범천(梵天)과 제석천(帝釋天)이다. 본존불상 뒤에 있는 십일면관음보살상 십일면관음상은 본존불상 뒷면에 감추어진 듯 배치되어 있다(그림 1). 다른 부조상들에 비해 고부조이고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머리에는 큼직한 원형 두광(頭光)을 둘렀으며, 세 겹의 연꽃이 겹친 대좌 위에 서 있다. 왼쪽 어깨를 가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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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세계의 수호자 신장상
석굴암 방형 전실에는 다양한 종류의 신장상(神將像)이 있다. 팔부중상(八部衆像), 금강역사상(金剛力士像), 사천왕상(四天王像)으로 8세기 중엽에서 후반에 유행했던 신장상은 모두 모여 있다. 입구부터 순서대로 여덟 구의 팔부중상, 좀 더 안쪽의 꺾인 곳에는 두 구의 금강역사상, 더 안쪽의 짧은 통로에는 네 구의 사천왕상이 위계에 맞게 서 있다. 이들 신장상은 석굴 입구에 나란히 서서 원형 주실의 불, 보살, 승려들을 굳건히 지키는 역할을 맡았다. 불법을 수호하는 여덟 무리의 설법 청중, 팔부중상 그림 1. 석굴암 전실 좌우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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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사원으로서의 석굴암의 의미
석굴사원은 암벽을 깎아 만든 건축물로 이루어진 종교적 시설을 가리킨다(그림 1). 인도에서 등장한 석굴사원 형식은 불교의 전래와 함께 중앙아시아, 중국, 한국으로 전해져 다양한 모습으로 조성되었다. 석굴사원은 암벽 일부를 사용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도심이나 번잡한 곳에서는 멀리 떨어진 자연 속에 위치한다. 조성 방법에서도 부재를 결구하여 수직으로 세우는 일반 건축과는 달리 암벽을 파고 들어가 공간을 만든다. 우리나라의 대표 석굴사원인 석굴암은 토함산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석굴사원의 전형적 입지를 따른다. 형태적으로도 다른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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