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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봉(섭민)

한글환봉(섭민)
한자煥峯(攝旻)
유형인물
시대조선후기
출생1767년
입적1850년
환봉(煥峯)
탁월한 기억력과 언변으로 교화에 힘쓰며 사찰 중창에 크게 공헌한 조선 후기의 고승
1767년(영조 43) 옥천 가치(加峙)의 임(任)씨 가문에서 태어난 환봉 섭민(煥峯攝旻) 스님은 1783년(정조 7)에 출가하였다. 37세가 되던 1803년(순조 3)에 남평(南平) 운흥사(雲興寺) 관음전(觀音殿)에서 완호 윤우(玩虎倫佑) 스님의 제자가 되었다. 이곳에서 입실제자(入室弟子)로서 그의 법을 이어받았다. 이후 미황사(美黃寺)의 여척(如倜) 화상과 경성(京城)에 가서 연담(蓮潭) 대종사의 비석 석재를 구해 비문을 새겨 돌아왔다. 스님은 비범한 기억력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진다. 법문을 들으러 온 100여 명이 넘는 대중들의 이름과 각자의 세부적인 사항을 단 한 번 들으면 모두 잊지 않는 뛰어난 능력을 지녔다고 한다. 또한 혜안을 지녔으며 변재(辯才)가 뛰어나 설법으로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주었고, 의견이 상충하는 이들 사이에서 조화(調和)를 이루어 냈다. 이러한 그의 능력은 불법 전파와 교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후대 불교계의 본보기가 되었다. 1811년(순조 11) 해남 대흥사에 큰불이 났을 때는 제주도까지 건너가 재물을 화주하여 복원에 큰 공을 세웠다. 또한 호의(縞衣) 스님과 함께 기림사(祇林寺)에서 옥으로 불상을 조성하는 등 침체기에 있던 불교계 중흥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당시 선사(先師) 완호 윤우의 문하생들은 각자의 특기에 따라 구분되었는데, 덕행(德行)에는 성묵(聖默)·호의(縞衣)·하의(荷衣), 언어에는 환봉(煥峰)·중화(中和)·영서(靈瑞), 행정사무에는 설암(雪岩)·치암(癡庵), 문학에는 화담(華潭)·초의(草衣)가 있어 공자(孔子)의 십철(十哲)이나 석가모니의 십대제자(十大弟子)와 견줄 만하였다. 법맥(法脈)으로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72세 제자이자, 태고(太古)의 16세 제자, 청허(淸虛)의 10세 제자, 연담(蓮潭)의 3세 법손이었다. 그의 법을 이은 제자로는 퇴연 축인(退淵竺仁)이 있으며, 손제자로는 견향 상훈(見香尙薰), 증손제자로는 낭주(朗州) 금성산(錦城山) 아래에서 태어난 진양(晋陽) 강(姜)씨 가문의 금성 보헌(錦城普憲), 현손제자로는 청해(淸海) 숙승봉(宿僧峯) 아래 출신의 능암 세환(楞庵世煥)이 있었다. 스님에게서 계를 받은 제자는 총 30여 명에 달했다. 스님은 1850년(철종 1) 2월 3일 대흥사 명적암(明寂庵)에서 세수 84세, 법랍 68년으로 입적하였다.
· 집필자 : 불교백과1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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