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화월(숙홍) |
|---|---|
| 한자 | 化月(淑葒) |
| 유형 | 인물 |
| 시대 | 조선 후기 |
| 출생 | 1820년 |
| 입적 | 1886년 |
| 호 | 화월(花月) |
| 주요주석처 | 강진 보리산 |
검소한 생활과 뛰어난 언변으로 후학을 양성하고 불법을 전한 조선후기 고승
조선 후기의 스님으로 법명은 숙홍(淑葒), 호는 화월(花月), 속성은 김씨이다. 1820년(순조 20) 전라도 영암에서 출생하였다. 1835년(헌종 1), 16세에 불법(佛法)의 인연을 맺어 해남 두륜산에서 서주(犀舟) 선사 문하에 입문하여 출가하였다. 이후 철선 혜즙(鐵船惠楫) 선사에게서 구족계를 수지하였다. 산내에 있는 북암(北庵)·진불암(眞佛庵)·상원암(上院庵) 등의 강원을 돌며 경전을 독송하고 필사하는 등 하루도 게으름 없이 수행에 정진하였다. 이와 같은 강경(講經) 수행은 후에 제자들을 지도하는 바탕이 되었다. 서주 선사의 법상 앞에서 향을 올리고 법통(法統)을 계승한 후, 강진 보리산(菩提山)에서 30여 년간 수행하였다. 솔잎으로 식사를 해결하고 풀로 만든 의복을 착용하는 등 극도로 검소한 수행 생활을 실천하였다.
수행자의 네 가지 인연인, 수행 도량으로서의 토지(土地), 함께 정진하는 도반인 납자(衲子), 신심 깊은 시주(施主), 그리고 수행에 필요한 외적 시설이 모두 구족(具足)하였다. 한결같이 청빈한 수행 자세를 지켜왔기에 이와 같은 네 가지 인연이 갖춰질 수 있었다.
이러한 청정한 수행자의 모습에 감동 받은 신남신녀(信男信女)들이 함께 모여들어 오디를 먹으며 수행하였고, 그중 상당수가 사미계와 비구계를 수계하였다. 선지식(善知識)을 가까이하고 도반들과 함께하니 자연히 명성이 퍼졌는데, 이는 ‘명성을 피하면 명성이 따르고, 이름을 감추면 이름이 따른다.’라는 말과 같았다.
모든 일을 정법(正法)에 따라 처리하였으며, 뛰어난 언변과 필력으로 중생 교화에 막힘이 없었다. 사찰의 재물을 아끼고 화려한 의복을 멀리하여 평생 한 번도 비난받지 않았다. 제자로 청악 만하(淸岳晩霞)가 알려져 있으며, 법을 전해 받은 제자 34명, 계를 받은 제자 20여 명, 선법(禪法)을 전수한 제자 31명을 배출하였으며, 수은(受恩) 제자는 한두 명이었고 사숙(私淑)한 제자는 매우 많았다. 이들은 모두 스님의 수행 정신을 이어받아 불법 전파에 힘썼다.
평생을 수행과 교화에 바친 스님은 1886년(고종 23) 병술년에 세속 나이 67세, 승랍(僧臘) 51년으로 입적하였다. 조선 후기 불교계의 모범이 된 스님의 가르침은 수많은 제자를 통해 면면히 이어졌으며, 그의 검소한 수행과 중생 제도의 원력(願力)은 후대 불자들의 귀감이 되었다.
· 집필자 : 불교백과1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