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하의(정지) |
|---|---|
| 한자 | 荷衣(正持)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호의, 초의, 대둔사 |
| 시대 | 조선후기 |
| 출생 | 1779년 |
| 입적 | 1852년 |
| 호 | 하의(荷衣) |
| 주요주석처 | 대흥사 |
조선 후기 두륜산 대둔사를 중심으로 활동한 수행승이자 호의, 초의와 함께 삼의로 불린 고승
조선 후기의 고승으로, 1779년(정조 3)에 전라남도 영암에서 출생했다. 속성은 임(林)씨 이며, 어머니가 구슬을 받는 꿈을 꾸고 잉태했다고 전한다. 어린 시절부터 화려한 것을 멀리하고 번거로움을 싫어하였는데, 이는 전생의 인연이 깊이 배어 있는 것이라 여겨졌다. 숙세의 인연으로 어린 시절부터 불법에 뜻을 두었던 그의 마음을 부친도 막을 수 없었다고 전한다.
1795년(정조 19), 17세에 두륜산으로 입산하여 백련 도연(白蓮禱演, 1737~1807) 선사를 은사로 출가하였다. 이후 완호(玩虎) 법사의 계단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으며 그의 법을 이었다. 구족계를 받은 후에는 불법 연구와 수행을 위해 전국의 사찰을 순례하였다. 남쪽으로는 달마사(達摩寺)를, 북쪽으로는 덕룡사(德龍寺)를 찾았으며, 동쪽의 능가사(楞伽寺)와 서쪽의 첨찰사(尖察寺)에 머물며 수행을 이어 갔다. 이러한 운수 행각은 그의 불교 식견을 넓히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운수 행각을 마친 후에 스님은 특별한 시간을 투자한다. 하의는 30여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문을 닫아걸고 부처님 가르침의 이치를 깊이 연구하며 수행에 전념하였다. 이 시기에 그는 동문 수행자인 다른 스님들과 깊은 교류를 나누었는데, 특히 호의(縞衣)와 초의(草衣) 스님과 매우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이들의 친밀한 관계는 당시 산문에서 이들을 ‘삼의(三衣)’라 부르게 된 계기가 되었으며, 이는 설담(雪潭) 문하의 삼담(三潭)에 비견될 만큼 유명했다.
체격이 건장하고 위엄 있는 모습의 비구(比丘)였던 하의는 사찰 행정에서도 매우 신중했다. 이러한 그의 성품은 주변에서 비난을 받지 않고, 오히려 두터운 신망을 얻는 바탕이 되었다. 문장과 해석에도 뛰어나 그가 읊는 게송은 구슬을 꿴 것처럼 유려했다고 전해지며, 문장을 훈고하고 해석할 때는 대나무를 쪼개듯 명쾌했다고 한다. 평소 맛있는 음식을 탐하지 않았으며, 고귀한 기품과 깊은 도행(道行)을 보였다.
1852년(철종 3) 6월 11일, 74세의 나이로 대둔사(大芚寺) 도반암(導般庵)에서 입적하였다. 법랍 58년으로 그가 남긴 『어록』 1권이 있으며, 백파(白坡) 신헌구(申獻求) 거사가 그의 진영에 대한 찬(贊)과 서문을 지었다. 조선 후기 불교계에서 그의 위상이 매우 높았음을 알 수 있다.
· 집필자 : 불교백과1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