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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니전

한글비구니전
한자比丘尼傳
유형문헌
키워드비구니, 구족계
시대양(梁)
간행연도516년
간행처장엄사(莊嚴寺)
중국 남북조시대 65명 비구니의 생애를 기록한 전기집
남북조시대 양(梁)의 승려 보창(寶唱)이 516년 장엄사(莊嚴寺)에서 편찬한 비구니 스님들의 전기집이다. 357~519년, 진(晉)·송(宋)·제(齊)·양(梁) 시대에 활동한 비구니 스님 65명의 생애와 수행담을 기록했다. 보창은 비문(碑文)·문집(文集) 등의 문헌 자료를 널리 수집하고, 박학한 이들을 방문하여 구술을 채록했으며, 노인들을 찾아 확인하는 등 엄밀한 고증을 거쳐 전기를 완성했다. 수록된 인물은 진 13명, 송 23명, 제 15명, 양 14명이며, 이들의 활동 무대는 51곳에 달하는데, 주로 양자강(揚子江) 북쪽 지역에 분포한다. 이 전기를 통해 비구니 스님들의 출가 동기와 수행 생활, 그리고 교화 활동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중국 최초의 비구니는 정검(淨檢)으로, 26세에 서역(西域) 승려 지산(智山)으로부터 10계를 받았다. 진 함강(咸康, 335~342) 연간에 승건(僧建)이 월지국(月支國)에서 승기니갈마(僧衹尼羯磨)와 계본(戒本)을 가져왔고, 357년 담마갈다(曇摩羯多)를 청해 정검 등 4인이 구족계를 받았다. 433년에는 사자국(師子國)의 비구니 철살라(鐵薩羅) 스님이 건너와 남림사(南林寺)에서 300명의 여성에게 구족계(具足戒)를 수계하였다. 비구니 스님들의 출가 동기는 매우 다양했다. 종교적 열망이나 불교 가정에서 자연스럽게 출가한 경우도 있었지만, 안령수(安令首)·담비(曇備)·승기(僧基)는 혼인 문제로, 묘상(妙相)은 결혼 생활의 권태로, 도의(道儀)는 남편과의 사별로 출가를 선택했다. 이들 비구니 65명 중 53명이 문자 해독 능력을 보유했다는 점은 당시 비구니들의 높은 문해력을 보여 준다. 출가 후 이들은 지계(持戒)와 경률(經律) 연구에 전념하며 수행자로서의 삶을 이어갔다. 특히 담비는 300여 제자를 양성하고 하후사(何后寺)를 창건하는 등 교단 발전에 큰 공헌을 했으며, 강명감(康明感)은 최초의 비구니 사찰인 건복사(建福寺)를 설립하여 비구니 교육의 기반을 마련했다. 법상(法相)은 계율과 좌선(坐禪)에 정진하여 90세까지 수행했고, 법변(法辯) 은 오신채를 먹지 않는 엄격한 수행 끝에 좌선 중에 입적하는 등 철저한 수행의 모범을 보였다. 이들의 경전 연구에서는 『법화경(法華經)』 암송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으며, 『유마경(維摩經)』·『아미타경(阿彌陀經)』·『반야경(般若經)』·『수능엄경(首楞嚴經)』 등도 독송하며 깊이 있는 교학 연구를 이어갔다. 도향(道馨) 스님은 여러 경전을 암송하며 대중을 교화했고, 지승(智勝) 스님은 의소(義疏)를 저술하고 궁중에서 설법하는 등 학문적 성취를 이루었다. 이 가운데 특기할 만한 사항은 선묘니(善妙尼), 도종니(道終尼), 혜요니(慧耀尼), 담간니(曇簡尼), 빙니(憑尼) 등의 비구니가 『법화경』 「약왕보살본사품(藥王菩薩本事品)」의 가르침을 실천하고자 소신공양(燒身供養)으로 입적했다는 사실이다. 본서의 의의는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비구니 스님이 높은 학식과 수행력으로 당대 사회의 모범이 되었다는 점, 둘째, 독자적 위상을 가지고 사원을 건립하고 운영했다는 점, 셋째, 유교(儒敎)와 도교(道敎)가 지배하던 중국 사회에서 여성의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 집필자 : 불교백과1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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