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광세음응험기 |
|---|---|
| 한자 | 光世音應驗記 |
| 유형 | 문헌 |
| 키워드 | 관세음응험기, 속광세음응험기, 계관세음응험기, 영험전 |
| 판본 | 필사본 |
| 시대 | 남북조(南北朝) |
| 간행연도 | 육조시대(5-6세기) |
| 간행처 | 중국 |
| 소장처 | 일본 청련원(靑蓮院) |
중국 동진 말 부량이 쓴, 관세음보살의 가피를 기록한 영험기
관세음보살과 관련한 기적과 영험, 신행을 모아 놓은 영험기이다. 관세음보살 관련 영험기 가운데 가장 이른 판본으로, 원본은 전하지 않으며 일본에 판본이 남아 있다.
동진 중기에 사부(謝傅)가 지은 『광세음응험기(光世音應驗記)』와 동진 말기에 부량(傅亮, 374~426)이 지은 『광세음응험기』 두 가지가 있다. 사부의 것은 전하지 않으며, 부량의 『광세음응험기』는 『속광세음응험기(續光世音應驗記)』, 『계관세음응험기(繫觀世音應驗記)』와 함께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에 실려 있다.
『관세음응험기』는 일찍이 산실되었으나, 일본의 대장경 길수장(吉水藏)에서 가마쿠라[鎌倉] 중기의 필사본으로 발견되었다. 길수장은 일본의 절 청련원(靑蓮院)에 소장되어 있다. 목전제량(牧田諦亮)이 1970년 일본에서 출간한 바 있으며, 손창무(孫昌武)가 이 판본에 표점을 달고 교감해서 1994년에 출간하여 지금에 전한다.
부량은 남조(南朝) 송(宋) 시기의 유명한 문인이자 정치가이다. 부량의 판본 서문에서 사부의 것을 읽었으나 일찍이 사라지고 없어서 이를 안타깝게 여겨 기억에 따라 일곱 가지를 복원하였다고 적었다. 본 영험기에서 광세음보살의 근거는 서진(西晉) 286년[태강(太康) 7]에 축법호(竺法護)가 번역한 『정법화경(正法華經)』 「광세음보문품(光世音普門品)」이다. 일곱 가지 이야기의 조목은, ① 축장서(竺長舒), ② 백법교(帛法橋), ③ 삼호도인(三胡道人), ④ 두부(竇傅), ⑤ 여송(呂竦), ⑥ 서영(徐榮), ⑦ 축법의(笠法義) 등이다.
광세음응험기(光世音應驗記) 7편의 간략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축장서(竺長舒): 자기 집에 화재가 일어났을 때 광세음경(光世音經)을 외워 불길이 그의 집만을 피해 지나갔다.
② 백법교(帛法橋): 타고난 목소리로 불경을 낭송하여 불교 강연(佛教講演)을 잘한다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③ 삼호도인(三胡道人): 후위(後魏)의 석호(石虎)가 죽자 한족(漢族) 출신의 포로들이 자유를 얻게 되었다.
④ 두부(竇傅): 하방장관(河方將管)의 군대에 체포되어 투옥되었다가 구출되었다.
⑤ 여송(呂竦): 남계(南溪)에서 배를 타고 건너던 중 홍수를 만나 위험에 처했다가 구조되었다.
⑥ 서영(徐榮): 동양(東陽)에 가던 중 배가 소용돌이에 휘말렸다가 구조되었다.
⑦ 축법의(笠法義): 위중한 병에 걸렸을 때 관세음보살의 도움으로 치유되었다.
혼란기에 편찬된 이 책은, 전란의 시대를 살아가는 민중들의 불교신앙과 당시의 사회상을 생생하게 전한다. 가장 오래된 관세음보살 관련 영험기 가운데 하나이며, 신행과 관련하여 중국불교의 사례를 찾아볼 수 있는 주요 문헌이다. 관음신앙의 전파와 민심 안정이라는 실천적 목적으로 편찬되었으며, 후대에 이르러 불교 전적에 인용되는 등 불교계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 집필자 : 불교백과1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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