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우바리 |
|---|---|
| 한자 | 優婆離 |
| 산스크리트어 | Upāli |
| 팔리어 | Upāli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십대제자, 사리불, 목건련, 마하가섭, 우바리, 부루나, 수보리, 가전연, 라후라 |
석가모니 부처님의 십대제자 가운데 계율을 가장 잘 지킨 지계제일의 제자
부처님의 십대제자(十大弟子) 중 한 사람으로 계율에 정통하고 엄격한 수행으로 지계제일(持戒第一)이라 불렸다 부처님 입멸 후 제1차 결집에서 율장(律藏)을 전하였다. 궁정 이발사 출신으로 왕자들과 함께 출가하여 불교 교단의 평등을 보여주었다.
범어로 우팔리(Upāli)라 하며, 우바리(優婆離)·오파리(鄔波離)·우파리(憂波利)라고 음역하였다. 뜻으로 번역하여 근집(近執)·근취(近取)라 한다. 인도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의 궁정 이발사였던 그는 수드라 계급 출신이었다. 부처님 성도 제6년에 부처님의 사촌 형제인 발제(跋提)·아나율(阿那律)·아난(阿難)·데바닷다 등 왕자들이 출가할 때, 그들의 머리를 깎아주고 함께 출가하였다.
우바리는 왕자들보다 먼저 구족계를 받아 그들의 상좌(上座)가 되었는데, 이는 불교 교단의 사성평등(四姓平等)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에 따르면, 그는 전생에도 이발사로서 벽지불(辟支佛)의 머리와 손톱을 깎아 주고 공양을 올린 공덕이 있었다. 당시 부처님의 가르침 중 계율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구족계를 받아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서원을 세웠다. 그 인연으로 현생에서 일찍이 출가하여 지계제일의 제자가 될 수 있었다.
계율에 정통하고 수행이 엄격하여 부처님께서도 경전에서 가장 계율을 잘 지키고 범하지 않는다고 칭찬하였다. 부처님 입멸(入滅) 후 왕사성(王舍城)에서 열린 제1차 결집에서 오백 아라한과 함께 율장(律藏)을 암송하였는데, 이는 불교의 삼장(三藏) 성립에 중요한 기틀이 되었다. 아난이 경장(經藏)을 전했다면, 우바리는 율장을 전하여 후대 불교 교단의 근간을 마련하였다.
태장계만다라(胎藏界曼荼羅)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석가원(釋迦院)이 있는데, 우바리는 그곳의 성문 중 한 분으로 석가모니의 왼쪽 위 열 제7위에 있다. 이 성문은 사람과 같은 피부색을 지닌 비구로, 연잎 위에서 가부좌한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같은 이름의 우바리로 『중아함(中阿含)』에 등장하는 우바리 거사가 있다. 그는 니건자(尼乾子)의 제자였다가 부처님께 귀의한 재가불자로, 지계제일 우바리와는 다른 인물이다. 18세기 태국의 우팔리 비구 또한 태국 승단의 계법(戒法)을 스리랑카에 전한 고승으로, 역시 별개의 인물이다.
· 집필자 : 불교백과1팀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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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바리는 바로 저희들의 종이었으니 부처님께서는 먼저 그에게 구족계를 주십시오. 그런 뒤에 저희들을 제도하시면 저희들과 모든 석씨 종족들은 그 사람에 대한 큰 교만을 깨뜨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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