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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원사

한글심원사
한자深源寺
유형사찰
키워드영원 조사, 흥림사, 범일 국사, 무학 자초, 부모은중경, 지장신앙, 취운당비
주소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 동송읍 상노1길 58
종단정보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 신흥사의 말사
관련인물영원조사(靈源祖師), 범일국사(梵日國師), 무학 자초(無學自超), 인숭(印崇), 정인(正印), 제월당(霽月堂), 취운당(翠雲堂), 풍담당(楓潭堂), 호연당(浩然堂), 청하당(靑霞堂), 청심당(淸心堂), 유연수(劉蓮叟), 이진학(李鎭學) 춘산(春山), 백용성(白龍城), 서암(西庵), 월하(月下), 안덕암(安德庵), 김상기(金相基)
신라시대에 창건하여 조선 후기에 번성한 지장신앙 사찰
심원사는 신라시대 647년(진덕여왕 1)에 영원조사(靈源祖師)가 흥림사(興林寺)로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859년(헌안왕 3)에 사굴산문(闍崛山門)의 개산조 범일국사(梵日國師, 810~889)가 중창하였다. 조선시대 1396년(태조 5)에는 무학 자초(無學自超, 1327~1405)가 중창하면서 심원사로 고쳤다. 1577년(선조 10)에는 절에서 『불설대보부모은중경(언해)』을 간행하였다. 이후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1595년(선조 28)에 인숭(印崇)·정인(正印) 등이 중건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천불전, 해장전(海藏殿), 천태각, 청향각, 산영루 등 250여 칸의 전각을 지닌 대찰이었다. 17세기에는 절에서 수행한 고승들의 부도와 비가 건립되었다. 제월당(霽月堂)·취운당(翠雲堂)·풍담당(楓潭堂)·호연당(浩然堂)·청하당(靑霞堂)·청심당(淸心堂) 등의 부도와 1636년(인조 14)의 제월당 경헌비, 1652년(효종 3)의 취운당비 등이다. 대부분 청허 휴정(淸虛休靜, 1520~1604)의 문손들이다. 1907년 보개산을 거점으로 활동하던 의병과 관군의 전투 과정에서 전소되었다. 1909년부터 1918년까지 유연수(劉蓮叟), 이진학(李鎭學) 등이 중창하였다. 1935년에는 춘산(春山)이 화산경원(華山經院)이라는 강원을 설립하였다. 근대 시기에는 독립운동가 백용성(白龍城, 1864~1940), 조계종 전 종정 서암(西庵, 1917~2003), 월하(月下, 1915~2003), 태고종 전 종정 안덕암(安德庵, 1914~2003) 등 고승들이 이곳에서 수행하였다. 이후 한국전쟁으로 다시 소실되었다. 1955년 주지 김상기(金相基)가 절을 재건하면서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였다 1962년에는 명주전(明珠殿)을 건립하였고, 1970년에는 대웅전과 요사 등을 중건하였다. 원래의 심원사는 원심원사(原深源寺,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동내로 970번길 32-268)라고 한다. 2000년 이후 복원을 시작하여 지금은 극락보전과 대웅전, 지장전, 산신각 등을 갖추었다. 가람은 대웅전, 극락보전, 명주전, 산신각, 보제루, 요사 등으로 이루어졌다. 명주전은 지장보살상을 봉안한 전각으로 다른 절과는 달리 주불전 역할을 한다. 이 지장보살상에 관한 전설이 있다. 신라 때 어떤 사냥꾼 형제가 멧돼지에게 화살을 쐈다. 그런데 화살을 맞은 멧돼지 흔적을 따라가 보니, 심원사 명주전에 있던 지장보살이 어깨에 화살을 맞은 채 연못 속에 있었다. 이에 형제는 살생의 악업을 뉘우치고 출가하여 석대암(石臺庵)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이 전설에 따라 명주전의 지장보살상 양옆에 돼지 조각상을 함께 안치하였다.
· 집필자 : 한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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