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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복사

한글심복사
한자深福寺
유형사찰
키워드석조비로자나불좌상
주소경기도 평택시 현덕면 심복사길 22
종단정보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 용주사의 말사
관련인물영조(永祚), 정준(正俊), 원공당(圓空堂) 정무(正無)
고려시대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을 봉안한 사찰
심복사는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에 창건하였다. 대적광전 앞의 3층 석탑이 고려의 양식을 지녔다. 조선시대 1575년(선조 8)에 중건하였고, 1705년(숙종 31), 1767년(영조 43), 1825년(순조 25)의 중건 사실이 상량문 등에 전한다. 1934년에 영조(永祚)가 중건하였고, 1978년에 정준(正俊)이 능인전을 중수하였다. 1990년에 대적광전을 중건하였고, 2018년에는 원공당(圓空堂) 정무(正無, 1931~2011) 대종사의 사리탑과 불설부모은중경 탑비를 봉안하였다. 가람은 대적광전, 삼성각, 종각, 누각, 응화당, 일주문, 어촌재(漁村齋), 원공당 정무 사리탑,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촌재는 곡부 공(孔)씨 문중의 재실(齋室)이다. 공자의 56세손인 어촌 공부(漁村孔俯, 1352~1416)를 제향한다. 그는 글씨가 뛰어나 1410년(태종 10)에 양주 회암사(檜巖寺)의 무학 자초(無學自超, 1327~1405) 비문, 「조선국 왕사 묘엄존자탑명(朝鮮國王師妙嚴尊者塔銘)」을 쓰기도 하였다. 조선시대부터 절 땅과 주변의 산이 공씨 집안 소유여서 절에 재실이 세워졌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양반 가문이 절을 창건, 운영하는 경우가 있었다. 유교문화가 지배적이었던 조선 사회에서도 많은 사람이 조상의 상례(喪禮)와 제례(祭禮)를 불교식으로 거행하였다. 선영(先塋)을 수호하기 위해 인근에 사암(寺庵)을 지어 승도에게 제례를 거행하도록 하였다. 이를 조상의 묘를 지키는 암자라는 뜻에서 분암(墳庵)이라고 하였다. 지금까지 11개 이상의 사례가 보고되었다.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1584) 가문에서도 분암을 운영하였다. 억불 사회에서 불교가 생존하는 한 방법이었다. 뚜렷한 기록이 전하지 않지만, 절은 이러한 분암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대적광전의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 보물이다. 왼손의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 전형적인 비로자나불의 수인(手印)을 지녔다. 중생과 붓다가 둘이 아닌 하나라는 뜻이다. 양쪽 팔꿈치 부분의 옷주름을 두 장의 꽃잎이 겹친 모습으로 새겼다. 이러한 문양은 9~10세기의 석불과 철불 등에서 자주 나타나므로, 이 시기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한다.
· 집필자 : 한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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