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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륵사

한글신륵사
한자神勒寺
유형사찰
키워드원효, 나옹 혜근, 고려대장경, 대장각기비, 보제존자석종, 원찰, 보은사
주소경기 여주시 신륵사길 73
종단정보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 용주사의 말사
관련인물원효(元曉), 나옹 혜근(懶翁惠勤), 무학 자초(無學自超), 이곡(李穀), 이색(李穡), 무급(無及), 수봉(琇峯), 계헌(戒軒), 위학(偉學), 우안(宇眼), 천심(天心), 성인(性仁)
나옹 혜근이 수행하고 고려대장경을 봉안했던 사찰
신륵사는 신라 진평왕 때 원효(元曉, 617~686)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고려시대에 벽돌을 쌓아 올린 전탑(塼塔)을 조성하여 이후 ‘벽절[甓寺]’이라고 불렸다. 나옹 혜근(懶翁惠勤, 1320~1376)이 이곳에서 수행하다가 입적하였다. 나옹은 공민왕 대에 왕사에 임명되어 고려 후기 불교계를 이끌었다. 인도 출신의 스승 지공(指空, ?∼1363)과 제자 무학 자초(無學自超, 1327~1405)와 함께 고려의 삼화상(三和尙)으로 유명하다. 1382년(우왕 8)에는 2층의 대장각(大藏閣)을 건립하여 대장경을 봉안하였다. 원(元)나라 과거에 급제하였던 이곡(李穀, 1298~1351)과 그의 아들 이색(李穡, 1326~1396)이 발원하고, 나옹의 제자들과 무급(無及)‧수봉(琇峯) 등이 참여하였다. 여기에 봉안했던 1381년의 고려대장경 인출본은 1414년(태종 14)에 태종이 일본에 하사하여 현재 오타니(大谷)대학에 소장되어 있다. 조선시대 1469년(예종 1)에는 세종과 그의 비 소헌왕후(昭憲王后)의 영릉(英陵)을 여주로 이장하면서 절을 영릉의 원찰로 지정하였다. 이에 따라 1472년(성종 3) 대규모로 중창하여 2백여 칸의 전각을 중수, 신축하였다. 그 이듬해 성종의 어머니, 소혜왕후(昭惠王后)가 절 이름을 보은사(報恩寺)라고 고쳤다. 임진왜란 이후 퇴락하였다가 1610년(광해군 2년)에는 극락전을 중수하고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을 봉안하였다. 1671년(현종 12)에 계헌(戒軒)이 중건하였고, 1700년(숙종 26)에는 위학(偉學)‧우안(宇眼)‧천심(天心) 등이 삼존상을 봉안하였다. 1726년(영조 2)에는 전탑을 다시 세웠다. 1858년(철종 9)에는 순원왕후(純元王后)의 시주로 중건하였고, 1929년에는 성인(性仁)이 명부전을 중수하였다. 절은 남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명소에 위치하여 조선시대의 많은 이들이 이곳을 시와 글, 그림으로 남겼다. 가람은 극락보전, 명부전, 칠성각, 조사당, 종각, 구룡루, 강월헌, 심검당, 적묵당, 봉향각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극락보전의 ‘천추만세(千秋萬歲)’ 현판은 보는 위치에 따라 글씨가 달라 보이는 입체감을 지녔다. 성보문화재 가운데 극락보전의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 대리석재의 다층석탑, 다층전탑, 보제존자 나옹의 석종부도와 석종비, 고려 석등, 대장각기비 등이 보물이다.
· 집필자 : 한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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