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신계사

한글신계사
한자神溪寺
유형사찰
키워드보운 조사, 김유신, 금강산, 효봉 학눌
주소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 신북면 창대리 금강산
관련인물보운조사(普雲祖師), 법인국사(法印國師) 탄문(坦文), 묘청(妙淸), 우심(尤深), 효봉 학눌(曉峰學訥)
금강산 4대 사찰 중의 하나로 남과 북이 공동으로 복원한 사찰
신계사는 신라시대 519년(법흥왕 6)에 보운조사(普雲祖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금강산의 사찰 가운데 유점사, 표훈사, 장안사와 함께 4대 사찰로 유명하였다. 절 옆의 신계천(新溪川)에 물고기가 많이 살아 사람들의 살생이 빈번해지자, 보운이 용왕에게 발원하여 물고기를 다른 곳에 가 살게 하였다고 한다. 이 신이(神異)함을 기려 절 이름을 신계사라고 하였다. 653년(선덕여왕 7)에는 김유신(金庾信, 595~673)이 왕실의 안녕을 발원하며 중수하였다. 고려시대에는 법인국사(法印國師) 탄문(坦文, 900~975), 묘청(妙淸), 우심(尤深) 등이 각각 중건하였다. 조선시대에도 중건이 이어지다가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 1597년(선조 30)에 강원 감사 황융중(黃隆中)이 중건하였고, 1669년(현종 10)에는 석철(石喆)이, 1711년(숙종 37)에는 청휘(淸暉)가 중건하였다. 이후 절은 산내 암자가 여덟 개에 이르는 대찰로 발전하였다. 1914년에 대향각(大香閣)을 중건하였고, 1919년에는 최승전(最勝殿)을 건립하였다. 1925년에는 효봉 학눌(曉峰學訥, 1888~1966)이 신계사 보운암(普雲庵)에서 출가하였다. 효봉은 1962년 조계종의 초대 종정으로 한국불교를 중흥시켰다. 1945년경에는 화재 등으로 퇴락하여 반야보전·나한전·칠성각 등의 전각과 석탑만이 남아 있었다. 이후 한국전쟁으로 가람과 암자가 모두 소실된 채 이름만 남아 있었다. 1998년 남과 북은 ‘금강산 문화재 복원을 위한 합의’를 체결하였다. 이에 따라 2003년 대한불교조계종과 북측의 조선불교도연맹이 신계사 복원에 합의하고, 2004년부터 2007년까지 11개 전각을 복원하였다. 복원 이후 남과 북은 2009년부터 2015년까지 신계사에서 매년 합동 법회를 봉행하였다. 신계는 분단된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하나로 잇는 남북 교류협력의 상징적인 공간으로 거듭났다. 가람은 대웅보전, 만세루, 최승전, 극락전, 산신각, 종각, 축성전, 나한전, 어실각, 어실각문, 수승각, 3층 석탑, 요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 집필자 : 한상길

관련자료

지리정보

    • 내용
  • 위로
  • 불국토
    문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