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승가사 |
|---|---|
| 한자 | 僧伽寺 |
| 유형 | 사찰 |
| 키워드 | 수태, 석조승가대사좌상, 마애여래좌상, 의천, 함허 득통, 진흥왕 순수비 |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비봉4길 213 |
| 종단정보 |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 조계사의 말사 |
| 관련인물 | 수태(秀台), 지광(智光), 성언(成彦), 영현(領賢), 의천(義天), 함허 득통(涵虛得通), 도명(道明), 상륜(相侖) |
인도 출신의 중국승 승가 대사를 흠모하여 창건한 사찰
승가사는 통일신라시대 756년(경덕왕 15)에 수태(秀台, 혹은 秀臺)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인도 출신으로 중국에서 생불(生佛)로 추앙받았던 승가(僧伽, 628~710) 대사를 흠모하여 승가사라고 하였다. 고려시대 1024년(현종 15)에 지광(智光)과 성언(成彦)이 중창하면서 석조승가대사상을 봉안하였다. 1090년(선종 7)에는 영현(領賢)이 중수하였다. 1099년(숙종 4)에는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 1055~1101)이 불상을 개금하고 불당을 중수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선종(禪宗)에 속하였으며, 불교 억압에 맞서 호법론(護法論)을 주장한 함허 득통(涵虛得通·己和, 1376~1433)이 이곳에서 수행하였다. 1816년(순조 16)에는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가 절에 참배 왔다가, ‘진흥왕 순수비(眞興王巡狩碑)’를 발견하였다. 순수비는 진흥왕이 555년(진흥왕 16)에 북한산에 순행하며 영토를 확정한 일을 기념하여 568년 무렵에 건립하였다. 당시 절의 스님이 추사에게 비봉에 옛 비석이 있다고 알려주었고, 비까지 안내하였다. 추사는 절에 7일간 머물며 비문 판독에 전념하였다. 이듬해에는 조인영(趙寅永, 1782~1850)과 다시 찾아가 새로운 글자를 판독하였다. 고종 때는 명성황후와 상궁들의 시주가 이어졌다. 한국전쟁 때 크게 소실되었다가 1957년에 비구니 도명(道明)이 중창하였다. 이어 비구니 상륜(相侖)이 여러 전각을 중수, 신축하였다. 1994년에는 호국보탑을 조성하였다.
가람은 대웅전, 약사전(승가 대사 석굴), 종각, 일주문, 호국보탑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보문화재 중에서 석조승가대사좌상과 마애여래좌상이 보물이다. 승가대사좌상은 승가 대사의 모습을 새긴 초상(肖像) 조각이다.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과 함께 조사상(祖師像)으로는 매우 드문 사례이다. 두건을 쓰고, 얼굴의 광대뼈가 도드라진 시골 노인처럼 친근한 모습이다. 배[舟] 모양의 광배(光背)에는 연꽃, 덩굴, 모란 등의 무늬가 있다. 광배 뒷면에 1024년에 지광 등이 조성했다는 명문이 있다. 마애여래좌상은 높이 5.94m로 고려 때 조성하였다. 거대한 바위를 고르게 다듬고, 연꽃대좌에 앉은 여래의 모습을 양각하였다. 머리에는 팔각의 보관이 있고, 불상 주변에 전각과 같은 목조 시설을 세웠던 구멍이 남아 있다.
· 집필자 : 한상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