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수타사 |
|---|---|
| 한자 | 壽陀寺, 水墮寺 |
| 유형 | 사찰 |
| 키워드 | 원효, 일월사, 우적산, 월인석보 |
| 주소 | 강원특별자치도 홍천군 영귀미면 수타사로 473 |
| 종단정보 |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 월정사의 말사 |
| 관련인물 | 공잠(工岑), 학준(學俊), 승해(勝海), 정명(正明), 청송당(靑松堂), 기허당(騎虛堂), 유화당(遊華堂), 중봉당(中峯堂), 홍우당(紅藕堂), 홍파(洪波), 서곡 찬연(瑞谷燦淵), 경익(景益), 사인(思印) |
『월인석보』 초간본을 소장한 사찰
수타사는 신라시대 708년(성덕왕 7)에 원효가 우적산(牛跡山)에 일월사(日月寺)로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고려 광종(재위, 949~975) 때 중수하였고, 수행 도량으로 널리 알려졌다. 고려 말에는 3층 석탑을 조성하였다. 조선시대 1569년(선조 2)에 지금의 공작산(孔雀山)으로 이전하면서 이름을 수타사로 바꿨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36년(인조 14)에 공잠(工岑)이 대웅보전 등을 중건하였다. 1644년(인조 22)에 학준(學俊)이 중수하였고, 1658년(효종 9)에는 승해(勝海)와 정명(正明)이 흥회루(興懷樓)를 세웠다. 이후 범종과 사천왕상을 봉안하는 등 17세기 말 활발한 불사가 이어졌다. 승도가 증가하자, 청련당·백련당·송월당 등의 여러 당우를 중수하기도 하였다. 이 무렵 절을 이끌어 간 스님들이 청송당(靑松堂)·기허당(騎虛堂)·유화당(遊華堂)·중봉당(中峯堂)·홍우당(紅藕堂)·홍파(洪波)·서곡 찬연(瑞谷燦淵, 1702~1768) 등으로, 이들의 부도가 지금도 남아 있다. 1758년(영조 34)에는 절의 옥수암에 목조관음보살좌상을 봉안하였다. 복장에서 각종 다라니와 후령통 등이 발견되었고, 보살상은 현재 원통보전에 봉안되어 있다. 1861년(철종 12)에는 경익(景益)이 절의 사적기 「홍천현동공작산수타사사적(洪川縣東孔雀山水墮寺事蹟)」을 편찬하여 창건 이후 절의 역사와 전각의 중수 사실을 자세히 기록하였다. 현대 들어 1976년 심우산방을 중수하였고, 1977년에는 삼성각, 1992년에는 관음전을 새로 지었다.
가람은 대적광전을 중심으로 원통보전, 삼성각, 흥회루와 봉황문(천왕문), 심우산방, 3층 석탑, 보장각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보문화재 가운데 조선 후기의 대적광전과 1670년(현종 11)에 사인(思印)이 조성한 범종, 1676년(숙종 2)에 봉안한 소조의 사천왕상, 1460년(세조 5)에 간행한 『월인석보(月印釋譜)』 권17, 18 등이 보물이다. 범종을 조성한 사인은 17세기 말~18세기 초의 뛰어난 주종(鑄鐘) 장인(匠人) 승려였다. 현재 그가 조성한 범종 8구가 전하는데, 신라와 고려의 전통 동종 양식을 기반으로 조선 범종의 예술성을 잘 표현하였다고 평가된다. 범종 윗부분의 용뉴(龍鈕)에 있는 용의 표정과 자세가 살아 있는 듯하다. 『월인석보』는 석가여래의 일대기이다. 세조 때 처음 간행한 초간본으로, 사천왕상의 복장에서 발견되었다.
· 집필자 : 한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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