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선운사 |
|---|---|
| 한자 | 禪雲寺 |
| 유형 | 사찰 |
| 키워드 | 검단, 설파 상언, 백파 긍선, 박한영, 운기 성원 |
| 주소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선운사로 250 |
| 종단정보 |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 |
| 관련인물 | 검단(黔丹), 행호 극유(幸浩克乳), 일관(一寬), 설파 상언(雪坡尙彦), 백파 긍선(白坡亘琁), 환응 탄영(幻應坦泳), 박한영(朴漢永) |
검단이 창건한 백제의 사찰
선운사는 백제시대 577년(위덕왕 24)에 검단(黔丹)이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김제의 금산사(金山寺)와 함께 전북의 2대 본사이다. 통일신라 때의 역사는 전하지 않으나, 이후 고려시대 1354년(공민왕 3)에 효정(孝正)이 중수하였다. 조선시대 행호 극유(幸浩克乳)가 중창하였다. 행호는 1473년(성종 4) 세조의 셋째 아들 덕원군(德源君)의 지원을 받아 석탑만 남아 있던 경내에 2층의 장륙전과 관음전을 짓고, 1476년(성종 7)에는 천불대광명전, 1481년(성종 12)에는 지장전‧능인전 등을 신축하였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의 병화로 전각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1613년(광해군 5) 무장현감 송석조(宋碩祚)와 일관(一寬)이 합심하여 어실(御室)을 중수하고 보전(寶殿)과 누각 등을 중건하였다. 1619년까지 6년에 걸쳐 법당·천불전·지장전·능인전 등을 중건하였다. 이후 꾸준히 사세를 확장하였는데, 조선 후기 절의 대중이 260여 명에 달하는 등 많은 고승을 배출하였다. 조선 후기 화엄학의 대가 설파 상언(雪坡尙彦, 1707∼1791), 선문(禪門)을 중흥한 백파 긍선(白坡亘琁, 1767∼1852), 구한말의 율사 환응 탄영(幻應坦泳, 1847∼1929), 근대불교의 선구자 박한영(朴漢永, 1870∼1948), 현대불교의 강백(講伯) 운기 성원(雲起性元, 1898~1982) 등이 이곳 출신이다. 19세기 전반기에는 산내의 암자가 무려 50여 곳이나 있었으나, 지금은 참당암·도솔암·동운암·석상암 등 네 곳만 남아 있다.
가람은 대웅보전과 관음전·영산전·팔상전·명부전·산신각·만세루·천왕문, 6층 석탑과 괘불대·당간지주·석주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보문화재 가운데 대웅전과 만세루, 조선시대 금동지장보살좌상과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 도솔암 금동지장보살좌상, 참당암 대웅전과 석조지장보살좌상,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 등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 마애여래좌상의 감실에 검단 선사의 비결(秘訣)이 들어 있다는 전설이 전한다. 이 비결이 공개되면 한양이 망한다고 하는데, 동학혁명 때 손화중(孫華仲, 1861~1895)이 꺼내 갔다는 등의 이야기이다. 절의 유형문화유산으로는 영산전과 목조삼존불상, 신중도, 6층 석탑, 조선 후기 범종, 백파율사비 등이 있다. 가람 곳곳의 동백나무숲과 장사송(長沙松), 송악이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는데 모두 천연기념물이다. 매년 9, 10월에는 경내에서 도솔암에 이르는 산길에 꽃무릇이 만발하여 붉은빛 세상을 만든다.
· 집필자 : 한상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