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선림원터 |
|---|---|
| 한자 | 禪林院址 |
| 유형 | 사찰 |
| 키워드 | 순응, 금동관음보살입상, 홍각 선사, 홍각선사비 |
| 주소 |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서면 서림 |
| 관련인물 | 순응(順應), 각지(覺智), 동열(同說), 일조(日照), 원은(元恩), 운철(雲徹) |
통일신라시대 홍각선사가 수행하고 걸작 금동관음보살입상이 출토된 선찰
선림원은 통일신라시대 804년(애장왕 5)에 순응(順應)이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창건 당시의 사실은 전하지 않고, 10세기 전반기에 산사태로 매몰되어 더 이상의 역사가 이어지지 못하였다. 절터에서 발견된 범종 내부에 이두로 된 명문이 새겨져 있었다. 804년에 순응 등의 상화상(上和尙)과 선림원의 각지(覺智)와 동열(同說), 영묘사의 일조(日照)와 원은(元恩) 등이 조성에 참여하였다. 절터에 전하는 홍각선사비(弘覺禪師碑)를 통해 창건 이후 경문왕 대(재위 861~875)에 홍각이 크게 중창한 사실이 확인된다. 비는 886년(헌강왕 12) 무렵에 홍각의 제자 운철(雲徹)이 왕명을 받아 세웠다. 당시는 사림사지(沙林寺址)라고도 하였다. 절터에는 법당을 중심으로 남쪽에 3층 석탑이 있고, 서북쪽 한 단 높은 곳에 석등, 그 앞에 조사당(祖師堂) 터가 있다. 조사당 서편이 비각 자리이다. 1985년 동국대 박물관이 발굴 조사하였다. 804년의 범종은 일찍이 월정사로 옮겼는데, 한국전쟁으로 크게 불타 작은 조각들만 남았다.
2015년에 절터에서 높이 66.7cm에 이르는 금동관음보살입상을 발견하였다. 대좌와 광배‧장신구‧정병(淨甁) 등을 온전히 갖추었고, 머리카락‧입술‧수염 등에 채색한 흔적까지 그대로 남은 유일한 불상이다. 출토지가 명확한 통일신라의 소형 금동상들 가운데 가장 크고 아름다운 불상이다. 5년간의 복원을 거쳐 국립춘천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현재 절터에 남아 있는 석조물들은 대부분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3층 석탑과 석등, 홍각선사탑비, 부도 등이다. 3층 석탑은 2단의 기단과 3층의 탑신으로 구성한 전형적인 신라 석탑으로 창건할 때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기단부에서 작은 탑 60여 기와 동탁(銅鐸) 1개를 발견하였다. 탑 앞에는 배례석도 남아 있다. 석등은 신라의 전형적인 8각 원당형이다. 받침돌이 마치 서 있는 장고와 같은 모양인데, 기둥의 양 끝에는 구름무늬 띠를 두르고 가운데에는 꽃송이를 새긴 마디를 둔 후, 이 마디 위아래로 대칭되는 연꽃 조각의 띠를 둘러 모두 세 개의 마디를 이루게 하였다. 부도는 바닥돌과 3단의 받침돌만이 남아, 주인공이 누구인지 모르나 홍각으로 추정된다. 정사각형의 바닥돌 위로 3단의 받침돌을 올렸는데, 연꽃잎과 용‧구름의 조각 수법이 웅장한 느낌을 준다.
· 집필자 : 한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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