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석왕사 |
|---|---|
| 한자 | 釋王寺 |
| 유형 | 사찰 |
| 키워드 | 이성계, 무학 자초, 수군당, 원찰 |
| 주소 | 북한 강원도 안변군 설봉산 |
| 관련인물 | 이성계(李成桂), 무학 자초(無學自超), 현은 태화(玄隱太和), 설하 복성(雪河復性) |
조선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가 중창한 고려 사찰
석왕사는 고려시대에 창건하였는데, 정확한 시기와 과정은 전하지 않는다. 고려 말 1377년(우왕 3)에 이성계(李成桂, 1335~1408)가 폐사된 광적사(廣積寺, 함경북도 길주군)의 대장경과 불상 등을 석왕사에 옮겨 봉안하도록 하였다. 이때 절을 크게 중건하였는데, 이성계를 보좌하던 무학 자초(無學自超, 1327~1405)의 뜻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서산 휴정(西山休靜, 1520~1604)이 쓴 「설봉산석왕사기(雪峯山釋王寺記)」에 이성계와 무학의 인연이 전한다. 1384년(우왕 10)에 절 근처의 토굴에서 수행하던 무학이 꿈에서 이성계가 서까래 세 개를 등에 진 모습을 보았다. 이는 ‘왕(王)’ 자의 형상으로 이성계가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무학은 조선 건국에 크게 이바지하여 1392년(태조 1) 왕사로 추대되었다. 태조는 1401년(태종 1)에는 16일간 절에 머물며 소나무와 배나무를 심었다. 이후 절은 태조의 원찰로서 수군당(壽君堂)을 지어 왕조의 번영을 기원하였고, 국가의 지원과 보호를 받으며 대찰로 발전하였다. 1732년(영조 7)에는 대웅전과 영월루, 범종루, 조계문 등을 중수하였다. 1852년에는 현은 태화(玄隱太和)와 설하 복성(雪河復性) 등이 화재로 불탄 극락전과 백락당을 중건하면서 흥복루(興福樓)와 인지료(仁智寮), 용비루(龍飛樓) 등을 중수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대웅전과 응진전, 해장전(海藏殿) 등의 많은 전각과 48개의 말사를 관장하는 본사가 되었다. 그러나 한국전쟁의 와중에서 53동 이상의 전각 대부분이 전소되고 말았다. 용비루와 인지루, 호지문(護持門)과 설성동루(雪城東樓) 등 일부만 남았으나 사찰의 역할은 중단되었다. 1987년에는 큰 홍수로 용비루와 인지루마저 유실되었다. 2019년 북한에서 대웅전과 응진전, 심검당, 설성동루, 호지문, 비각 등의 여러 전각을 복원하였다. 북한 민족유산보호지도국이 고려미술창작사 등의 전문기관과 함께 10여 구의 불상과 탱화, 향로, 촛대, 청자 꽃병 등 수백 점의 불구를 마련하였다고 한다. 석왕사 일대를 휴양지로 조성하는 중이라고 한다.
· 집필자 : 한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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