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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

한글석굴암
한자石窟庵
유형사찰
키워드김대성, 석불사, 불국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석굴로 238
종단정보대한불교조계종 11교구 본사 불국사의 암자
관련인물김대성(金大城), 종열(從悅), 대겸(大謙), 조순상(趙巡相)
통일신라 김대성이 불국사와 함께 창건을 시작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석굴암은 통일신라시대 751년(경덕왕 10)에 김대성(金大城, 700~774)이 석불사(石佛寺)로 창건을 시작하였다. 김대성은 재상을 역임한 김문량(金文良)의 아들로 그 역시 재상을 지냈다. 김대성은 현세의 부모를 위하여 불국사를 중창하고, 전생의 부모를 위하여 석불사를 조성하였다. 신라불교의 전생, 보시에 대한 관념과 효심이 어우러진 결과였다. 불국사의 중창은 그의 사후 국가에서 완료하였고, 석불사도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진 듯하다. 이후 고려시대의 역사는 전하지 않고 조선 후기의 모습이 다양하게 전한다. 1688년(숙종 14) 이곳을 방문한 정시한(丁時翰, 1625~1707)은 『산중일기(山中日記)』에서 석굴의 본존과 존상들이 모두 온전하게 남아 있는 모습을 전한다. 이후 1703년(숙종 29)에 종열(從悅)이 중수하면서 굴 앞의 돌계단을 쌓았고, 1758년(영조 34)에 대겸(大謙)이 중수하였다. 조선 후기의 문인과 승려들이 이곳을 방문하여 시문을 많이 남겼다. 또한 정선(鄭敾, 1676~1759)의 실경산수 화첩으로 추정되는 『교남명승첩(嶠南名勝帖)』(1733년)에는 골굴석굴도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 그림에 따라 1960년대에 중수하면서 전실(前室)을 설치하였다. 조선 말기에는 울산 병사(兵使) 조순상(趙巡相)이 크게 중수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일인들은 석굴 전체를 일본으로 가져가려는 야만적인 계획도 세웠으나 무산되었다. 1913년부터 1923년까지 세 차례 중수하면서 존상의 위치를 바꾸거나 파손된 조각을 시멘트로 붙이는 등 원래의 모습을 심각하게 변형시켰다. 해방 후 1961년부터 1964년까지 행해진 석굴암 보수공사에서는 전실 앞쪽에 꺽인 채 놓여 있던 팔부중상을 네 구씩 일렬로 배치하고, 전실 보호각을 설치하였다. 또한 기존 콘크리트층 위에 콘크리트를 덧씌웠지만, 누수와 습기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아 별도의 조절 장치를 설치하였다. 1970년대에는 석굴 내부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유리막을 설치하였고, 이후부터 내부 관람이 제한되었다. 석굴암은 한국문화 최고의 아름다움을 지녔다. 신라인의 예술과 과학, 그리고 불교신앙의 정점을 이룬다. 일찍이 국보로 지정되었고,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석굴은 본존불을 중심으로 사방 곳곳에 십일면관음보살, 대범천과 제석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십대제자, 감실의 조각상, 사천왕, 금강역사, 팔부신중 등 많은 존상들이 불국토의 세계를 나타내고 있다.
· 집필자 : 한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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