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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봉사(터)

한글서봉사(터)
한자瑞峰寺(址)
유형사찰
키워드현오국사 종린, 현오국사비
주소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신봉동 산110 일대
관련인물현오국사(玄梧國師) 종린(宗璘), 이지명(李知命), 유공권(柳公權)
고려시대 현오국사 종린의 비석이 있는 절터
서봉사는 창건 시기와 창건주를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 현오국사(玄梧國師) 종린(宗璘, 1127~1179)이 주석했던 곳으로 현오국사비가 전한다. 현오는 인종(1109~1146)의 아들로 법명은 종린, 자는 중지(重之)이다. 1141년(인종 19) 인종은 아들을 개성 불일사(佛日寺) 징엄(澄儼, 1090~1141)에게 출가시켰다. 이후 그는 귀신사(歸信寺), 국태사(國泰寺), 중흥사(重興寺), 부석사(浮石寺) 등의 주지를 역임하면서 승통(僧統)이 되었다. 1147년(의종 1) 2월에는 의종의 초청으로 궁궐에 들어가 왕의 동생 충희(冲曦)를 제자로 맞았다. 고려시대는 불교가 크게 성행하여 왕자의 신분으로 출가하는 경우가 많았다. 현오의 스승 징엄은 숙종의 아들이었고, 징엄의 스승 의천(義天, 1055~1101)은 문종의 아들이었다. 1170년(명종 즉위년) 왕이 좌세(佐世)라는 호를 내렸고, 이듬해에는 궁궐에서 만수가사(滿繡袈裟)를 하사하였다. 이해 겨울 백좌회(百座會)에 참석하였으며, 1179년(명종 9)에 입적하였다. 1185년(명종 15) 시호를 현오라 하여 국사에 추증하고 서봉사에 비를 세웠다. 절에 국사의 비를 세울 정도면 상당한 사세와 규모를 지녔을 것이나 전하는 자료가 없다. 조선시대 1592년(선조 25) 6월, 임진왜란을 맞아 전라감사 이광(李洸)이 이끄는 조선군이 용인 광교산(光敎山)에서 격전을 펼쳤다. 이 무렵 절이 전소된 것으로 추정한다. 절터 2만 180㎡는 국가유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2013년부터 2019년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절터를 발굴 조사하였다. 동남향으로 경사면에 6단의 축대를 쌓고, 이곳에 여러 건물을 세웠던 자리가 남아 있다. 축대는 동서 방향으로 길이가 약 90m, 높이가 7~9m의 대규모로 확인되었다. 사찰에서 보기 드문 웅장한 크기로서 절의 규모 역시 컸음을 보여 준다. 이 축대 위에 27동 이상의 건물이 있었고, 2019년 조사에서는 현오국사비를 세웠던 원래 자리를 확인하였다. 현오국사비는 높이 1.88m, 너비 0.97m의 점판암으로 화강암의 받침석 위에 있다. 제액(題額)은 ‘증시현오국사비명(贈諡玄悟國師碑銘)’이고 본문은 자경 3.3㎝의 해서체이다. 비문은 고려의 문신 이지명(李知命, 1127~1191)이 찬하고, 글씨는 유공권(柳公權, 1132~1196)이 썼다.
· 집필자 : 한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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