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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사

한글상원사
한자上院寺
유형사찰
키워드진여원, 보천, 효명
주소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로 1211-14
종단정보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 월정사의 말사
관련인물보천(寶川), 효명(孝明), 영령암(英靈庵), 신미(信眉), 학열(學悅), 이종욱(李鍾郁), 한암(漢巖)
조선 세조가 문수보살의 감응을 받은 통일신라 사찰
상원사는 통일신라시대 705년(성덕왕 4)에 신문왕의 아들 보천(寶川)과 효명(孝明) 두 왕자가 진여원(眞如院)으로 창건하였다. 형 보천은 중대(中臺) 남쪽 진여원 터 아래에, 아우 효명은 북대(北臺) 남쪽에 암자를 짓고, 아침마다 1만 진신(眞身)의 문수보살에게 차를 공양하였다. 이후 효명은 효소왕으로 즉위하고, 보천은 수행을 계속하였다. 이 무렵 절에는 문수보살상을 봉안하고, 화엄결사(華嚴結社)를 개설하여 나라를 돕는 기도를 행하였다. 725년(성덕왕 24)에는 지금도 현존하는 범종을 조성하였다. 고려시대 1376년(우왕 2) 나옹(懶翁, 1320~1376)의 제자 영령암(英靈庵)이 중창하였다. 그해 겨울 33명의 수행자가 10년을 기약하고 좌선 수행하였는데, 5년째인 1381년(우왕 7) 법당의 불상이 빛을 발하고 향 내음이 퍼지는 영험이 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1401년(태종 1) 태종이 절의 사자암 중건을 명하고, 11월의 낙성식에 직접 참여하였다. 이후 세조(1417~1468)가 절에 행차하였다가 문수동자를 만나 괴질을 치료받았고, 절의 고양이가 자객의 습격을 알려 주었다는 일화가 전한다. 1464년(세조 10) 세조는 신미(信眉)와 학열(學悅)의 권유로 절의 중창을 시작하였다. 1466년(세조 12) 세조가 만난 문수동자를 목각으로 조성하고 전각과 불상, 탱화를 봉안하는 등 현재 가람의 골격을 완성하였다. 1469년(예종 1)에는 세조의 원찰로 지정되어 나라의 각별한 지원과 보호를 받았다. 현대 들어 1947년 이종욱(李鍾郁, 1884~1969)이 중건하였고, 한국전쟁 때는 본사 월정사가 전소되는 불행 속에서도 한암(漢巖, 1876~1951)이 목숨을 걸고 절을 지켜냈다. 1951년 1·4후퇴 당시 절이 북한군의 은신처가 될 것을 우려한 국군이 전각을 소각하려고 하였다. 그러자 한암이 법당 안에 좌정한 채 “불을 놓으라.” 하였다. 국군 장교가 감동하여 법당의 문짝만을 떼어 불사르고는 물러갔다. 가람은 문수전, 영산전, 청풍루, 소림초당, 청량선원, 동정각, 5층 석탑, 영산전 석탑, 부도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보문화재로는 725년에 조성한 범종, 1464년의 중창권선문, 1466년에 조성한 문수동자상 등이 국보이다. 문수동자상 복장 유물, 복장 전적, 1661년(현종 2)의 문수동자상 등이 보물이다.
· 집필자 : 한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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