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삼화사 |
|---|---|
| 한자 | 三和寺 |
| 유형 | 사찰 |
| 키워드 | 자장, 흑련대, 삼공사, 수륙재 |
| 주소 | 강원특별자치도 동해시 삼화로 584 |
| 종단정보 |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 월정사의 말사 |
| 관련인물 | 자장(慈藏), 품일(品日), 범일(梵日), 결언(決言) |
조선시대 최초의 국행수륙재 개설 사찰
삼화사는 신라시대 643년(선덕여왕 12)에 자장(慈藏)이 흑련대(黑蓮臺)로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통일신라시대 829년(홍덕왕 4)에 품일(品日)이 머물며 선종 사찰로 변모하였다. 864년(경문왕 4) 범일(梵日, 810~889)이 중건하고 삼공사(三公寺)라고 하였다. 이 무렵에 3층 석탑을 조성하였다. 고려시대 태조가 삼국을 통일한 후 절 이름을 삼화사로 바꿨다. 조선시대 1395년(태조 4) 태조가 고려의 왕족들을 추모하는 수륙재를 이곳에서 개설하였다. 고려의 마지막 왕 공양왕이 죽은 곳이 삼척이었고, 여기서 가까운 삼화사에서 수륙재를 열어 그들을 천도하였다. 이후 절은 국가가 주관하는 수륙재를 개설하는 중요 사찰로 거듭났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의 병화를 입은 후, 무릉계곡 상류로 옮겨 중건하면서 중대(中臺)라고 하였다. 1747년(영조 23)에는 큰 홍수로 가람이 무너지자 조금 위로 옮겨 지었다. 이후 중수가 이어지다가 1907년 일본에 맞선 의병들이 절에 머물렀는데, 이로 인해 일본군들이 가람을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후 중건하여 법등을 유지하다가 1977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중건하였다. 1997년에는 적광전을 중수하였고, 2013년에는 수륙재가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수륙재는 조선시대 불교의례의 범패‧장엄 등을 계승하고, 지역사회 통합을 위한 고혼 천도의 수륙재 전통을 가꿔 나가고 있다.
가람은 적광전, 약사전, 비로전, 극락전, 무문전, 천왕문, 일주문, 육화료, 심검당, 무향각, 3층 석탑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보문화재로는 3층 석탑과, 9세기 말에 조성한 철조 노사나불좌상, 1579년(선조 12) 월악산 덕주사에서 간행한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 등이 보물이고, 목조 아미타여래삼존좌상 및 복장 유물과 1607년(선조 40) 공주 갑사에서 간행한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 등이 강원도 문화유산이다. 노사나불좌상의 뒷면에는 조성 당시에 새긴 150여 자의 기록이 있다. 불상 조성에 참여한 결언(決言) 등의 승도와 시주자들의 이름이 있는데, 여기에 이두가 포함되어 있어, 10세기 언어와 문자를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 집필자 : 한상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