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사천왕사(터) |
|---|---|
| 한자 | 四天王寺址 |
| 유형 | 사찰 |
| 키워드 | 명랑, 신유림, 낭산 |
|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 947 |
| 관련인물 | 명랑(明朗), 월명(月明), 양지(良志) |
명랑이 당나라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해 문두루비법을 행한 사찰
사천왕사는 신라시대 679년(문무왕 19)에 창건하였다. 674년 당나라가 신라를 공격하자, 국가에서는 불력(佛力)으로 그들을 물리치기를 기원하며 절을 세웠다. 674년 의상(義相, 625~702)은 김인문(金仁問, 629~694)에게서 당군의 침입이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귀국 즉시 문무왕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문무왕은 명랑(明朗)에게 신라를 지킬 방책을 물었다. 명랑은 낭산 신유림(神遊林)에 사천왕사를 세우고 도량(道場)을 열 것을 권하여 5년 만에 절을 완성하였다. 신유림은 ‘신들이 놀던 숲’이라고 하여 신라인들이 신성시하던 곳이다. 절을 완성하기 전, 당군이 침략하자 명랑은 비단으로 임시 절을 짓고, 풀로 오방(五方)의 신상(神像)을 만들어 밀교의 비법, 문두루비법(文豆婁祕法)을 행하였다. 그러자 배를 타고 바다로 넘어오던 당군이 사나운 풍랑을 만나 모두 침몰하였다. 고려 때까지 이 문두루비법을 행한 단석(壇席)이 남아 있었다. 경덕왕(?~765) 때에는 월명(月明)이 이곳에 머물며 「도솔가(兜率歌)」, 「산화가(散花歌)」, 「제망매가(祭亡妹歌)」 등 유명한 향가를 지었다. 이 절에는 신라의 유명한 조각승 양지(良志)가 조성한 천왕상(天王像)과 팔부신중상(八部神衆像) 등을 봉안하였다. 언제 폐사되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 몽고의 침략으로 전소된 것으로 추정된다.
가람은 금당을 중심으로 동·서에 목탑이 있었다. 남·북방으로는 좌경루(左經樓)와 우경루(右經樓)를 두어 사천왕이 사방에서 금당을 수호하는 구조였다. 현재 절터에는 사적비를 받쳤던 귀부(龜趺) 2기와 당간지주 1기만이 남아 있다. 귀부는 머리가 파손되었지만, 사실적인 표현 수법, 거북등의 세밀한 조각 등으로 신라시대 손꼽히는 걸작 중 하나이다. 당간지주는 높이 2.4m로 간결한 양식이다. 목탑지에서 목탑의 기단에 붙였던 전돌 천왕상 40여 개를 발견하였다. 양지가 조성하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이 사천왕상을 경주국립박물관에서 복원하였다.
· 집필자 : 한상길
관련자료
더보기 +
더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