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부사의암 |
|---|---|
| 한자 | 不思議庵 |
| 유형 | 사찰 |
| 키워드 | 진표 |
| 주소 |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산내면 변산의 선계산 |
| 관련인물 | 진표(眞表), 이규보(李奎報) |
통일신라시대 진표가 창건하고 지장보살을 친견한 사찰
부사의암은 통일신라시대 740년(혜공왕 16)에 진표율사(眞表律師, 717?~752?)가 창건하였다. 진표는 점찰법(占察法)을 대중화한 인물이다. 간자(竿子)를 던져 전생의 선악 업보를 가늠하고 이에 따라 참회, 수행하는 것이 점찰법이다. 진표는 전라북도 완산주(현재의 전주 지역)에서 태어나 12세에 김제 금산사(金山寺) 숭제법사(崇濟法師)에게 출가하였다. 그는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명산을 찾아 수행하다가 740년 23세 때에 부안 변산 선계산(仙溪山)에 이르러 부사의암을 지었다. 이곳에서 그는 신체에 고통을 가하는 망신참(亡身懺) 수행을 하였다. 처음에 7일을 기약하고 오체(五體)를 바위에 부딪쳐 무릎과 팔뚝이 모두 부서졌다. 그래도 성인의 감응이 없자, 다시 7일을 기약하고 더욱 가혹하게 수행하였다. 14일이 지나자 마침내 지장보살이 나타나 정계(淨戒)를 주었다고 한다. 진표는 이후 3년 동안 이곳에 머물다가 영산사로 옮겨 수행 중에 미륵불을 친견하였다고 한다. 이후 금산사 금당에 미륵장륙상을 봉안하고, 미륵불의 수계 모습을 벽화로 조성하였다.
부사의암은 절벽 위의 작은 토굴이었다. 고려시대 1201년(신종 4) 이곳을 방문한 이규보(李奎報, 1168~1241)가 기록을 남겼다. 불사의방장(不思議方丈)은 높은 절벽 위에 있어서 1백 척쯤 되는 가파른 나무사다리로 올라가야 했다. 방장(方丈)은 쇠줄로 바위에 고정해 놓았고, 안에는 진표의 진영이 있었다. 이규보는 이곳에서 백여 보쯤 앞에 펼쳐진 서해의 절경에 감탄하며 시를 남겼다.
“무지개 같은 사다리 발밑에 뻗쳤으니(虹矗危梯脚底長), 몸을 돌려 만 길 아래로 내려가네(回身直下萬尋强). 지인은 이미 가고 자취조차 없는데(至人已化今無跡), 옛집 누가 돌보는가 지금도 그대로네(古屋誰扶尙不僵). 장륙불은 어느 곳에 나타나는가(丈六定從何處現), 대천은 이 속에 감출 만하네(大千猶可箇中藏). 완산의 아전, 세상일 잊고 은퇴한 이가(完山吏隱忘機客) 손을 닦고 한 줌의 향 올리러 왔네(洗手來焚一瓣香).”(『동국이상국전집』, 「남행월일기(南行月日記)」)
이후의 역사는 전하지 않고, 조선 중기까지 참회 기도처로 유지된 듯하다.
· 집필자 : 한상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