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봉원사 |
|---|---|
| 한자 | 奉元寺 |
| 유형 | 사찰 |
| 키워드 | 도선, 반야사, 금화사, 태고 보우, 태조, 화평옹주, 의소, 팔도승풍규정소, 개화파 |
| 주소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봉원사길 120 |
| 종단정보 | 한국불교태고종 종찰(宗刹) |
| 관련인물 | 도선(道詵), 태고 보우(太古普愚), 이동인(李東仁), 무불(無佛) |
도선이 창건하고 태고 보우가 중건한 한국불교태고종 본찰
봉원사는 통일신라시대 889년(진성여왕 3)에 도선(道詵)이 반야사(般若寺)로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고려시대 공민왕 때에 태고 보우(太古普愚, ?~1382)가 중건하고 금화사(金華寺)라고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태조의 초상화를 봉안한 진전(眞殿)이 있어 왕실의 원당 역할을 하였다. 1748년(영조 24) 영조는 딸 화평옹주(和平翁主, 1727~1748)가 사망하자, 절을 옹주의 원당으로 삼고, 봉원사라는 이름을 하사하였다. 1755년(영조 31)에는 세손(世孫) 의소(懿昭, 1750~1752)의 원당으로 지정하기도 하였다. 1788년(정조 12)에는 절에 팔도승풍규정소(八道僧風糾正所)를 설치하였다. 전국의 사찰을 관리하기 위해 7개 주요 사찰에 규정소를 두었는데, 봉원사가 여기에 포함되었다. 절은 조선의 근대화를 위해 헌신하였던 개화파들의 주요 모임 장소였다. 김옥균(金玉均), 서광범(徐光範), 박영효(朴泳孝), 유대치(劉大致), 그리고 개화승 이동인(李東仁, ?~1881)과 무불(無佛, ?~1884) 등이 이곳에서 비밀리에 모여 개화사상을 함양하고, 근대화를 꿈꾸었다. 1894년에는 성곡(性谷)이 약사전을 신축하였으며, 1911년에는 이보담(李寶潭)이 크게 중수하였다. 1939년에는 김영암(金英庵)이 명부전을 중수하였고, 1966년 최영월(崔映月)이 염불당을 지었다. 1970년 한국불교태고종을 설립하면서 종찰(宗刹)이 되었다. 절은 범패와 범음 등의 불교의례로 유명하다. 특히 영산재는 1973년에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2009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가람은 대웅전, 명부전, 극락전, 미륵전, 만월전, 삼천불전, 영각, 운수각, 영안각, 칠성각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명부전 편액은 정도전(鄭道傳, 1342~1398), 대웅전 편액은 이광사(李匡師, 1705~1777)가 썼고,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가 쓴 청련시경(靑蓮詩境)·산호벽루(珊瑚碧樓) 편액도 있다. 성보문화재로는 1704년(숙종 30) 조성의 목조 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 1760년(영조 36) 가야사(伽倻寺) 조성 범종, 1886년(고종 23)의 괘불도, 1894년(고종 31)의 약사불회도, 1901년의 아미타괘불도, 1905년의 산신도, 그리고 조선 후기의 『수륙무차평등재의촬요』와 『불설대보부모은중경』 등이 서울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집필자 : 한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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