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봉암사 |
|---|---|
| 한자 | 鳳巖寺 |
| 유형 | 사찰 |
| 키워드 | 지증대사 도헌, 희양산문, 정진대사 긍양, 함허 기화, 봉암사 결사, 지증대사적조탑 |
| 주소 |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원북길 313 |
| 종단정보 |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의 말사 |
| 관련인물 | 지증대사(智證大師) 도헌(道憲), 정진대사(靜眞大師) 긍양(兢讓), 함허 기화(涵虛己和), 신화(信和), 성철(性徹), 청담(靑潭), 자운(慈雲), 우봉(愚鳳) |
신라 희양산문의 본사로 봉암사 결사 수행 사찰
봉암사는 통일신라시대 879년(헌강왕 5)에 지증대사(智證大師) 도헌(道憲, 824~882)이 창건하였다. 도헌은 이곳에서 신라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희양산문(曦陽山門)을 열었다. 고려시대 935년(태조 18)에는 정진대사(靜眞大師) 긍양(兢讓, 879~956)이 중건하였다. 희양산문은 도헌‧양부(揚孚, ?~917)‧긍양이 계승하며 고려시대까지 수행 전통을 수립하였고, 봉암사는 참선 수행의 명찰로 자리매김하였다. 조선시대 1431년(세종 13)에 함허 기화(涵虛己和, 1376~1433)가 중수하고, 후학을 양성하였다. 1674년(현종 15) 소실되었다가 신화(信和)가 중건하였다. 현대 들어 1947년 성철, 청담, 자운, 우봉 등이 이곳에서 “부처님 법대로 살아보자.”라며 ‘봉암사 결사’를 시작하였다. 수좌들은 17개 조의 공주규약(共住規約)을 만들어 불공과 천도재를 받지 않고, 수좌가 노동을 통해 생활하기로 결의하였다. 또한 참선 수행, 포살 실시, 능엄주 암송, 자주·자치 정신 구현, 청규와 계율 준수 등을 제정하였다. 왜색풍의 가사와 장삼 등을 새롭게 바꿨다. 결사가 시작되자 수행자와 신도들이 몰려들었고, 신도들을 대상으로 보살계 법회를 열었다. 이때부터 신도가 승려에게 예의를 표하는 삼배가 시작되었다. 봉암사 결사는 한국불교의 근본 정신과 전통을 회복하려는 노력이었다. 1984년 이후 일반인의 출입을 일절 금지하고 선 수행 도량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가람은 대웅보전, 금색전, 조사전, 극락전, 산신각, 범종각, 봉황문, 남훈루, 태고선원, 해회당, 선열당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각 대부분은 현대에 복원하였고, 이 가운데 극락전과 봉황문만이 조선시대의 건물이다. 극락전은 일반적인 사찰 전각에서는 볼 수 없는 차양 칸을 둘러 마치 중층 건물 같은 모습이다. 조선 중후기에 왕실의 원당을 세우면서 궁궐 건축 양식으로 지었다. 성보문화재로는 지증대사적조탑비가 국보이고, 지증대사적조탑, 정진대사원오탑, 정진대사원오탑비, 통일신라 3층 석탑, 극락전, 봉황문, 1586년(선조 19)에 나운(蘿雲)과 법정(法正)이 조성한 목조 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 유물 등이 보물이다. 절에서 가까운 옥석대의 마애미륵여래좌상도 보물이다. 환적당 의천(幻寂堂 義天)이 1663년(현종 4)에 봉안하였는데, 높이가 540cm, 너비가 503cm로 조성자와 조성 시기를 명확히 알 수 있는 드문 사례이다.
· 집필자 : 한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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