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봉성사(터)

한글봉성사(터)
한자奉聖寺址
유형사찰
키워드신문왕, 혜통, 신충, 봉성사 명문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옛 경주교육청 일대
관련인물신충(信忠), 혜통(惠通), 신문왕(神文王),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신라 신문왕 대 신통의 창건 전설이 전하는 태종무열왕의 원찰
봉성사는 통일신라시대 685년(신문왕 5)에 국가에서 창건하였다고 전하는데, 지금은 폐사되었다. 신문왕은 등창을 앓다가 혜통(惠通)의 도움으로 나았다. 혜통은 당나라에 유학하여 밀교의 비밀법(祕密法)을 배워 온 인물이다. 신통은 신문왕에게 왕위에 오르기 전 양민 신충(信忠)을 노비로 삼았으므로, 그가 보복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절을 세워 원한을 풀어 줄 것을 제안하였고, 마침내 신충봉성사(信忠奉聖寺)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당시 “왕이 절을 지어 주어 고통에서 벗어나 하늘에 태어났으니 원이 풀렸도다.”라는 노랫소리가 들렸고, 그 자리에 절원당(折怨堂)을 세웠다고 한다. 한편 경덕왕 대(742~765)에 활동한 상대등 신충이 창건하였다는 설도 있다. 이후 절에 성전(成典)을 설치하였다. 성전은 신라중대 사원의 관리와 운영을 담당하던 관청이었으므로 해당 사찰은 관사(官寺)로서 국가의 우대를 받았다. 현재 9개의 사찰에서 확인된다. 봉성사를 비롯하여 사천왕사(四天王寺)·감은사(感恩寺)·봉덕사(奉德寺)·봉은사(奉恩寺)·영묘사(靈廟寺)·영흥사(永興寺), 황룡사(皇龍寺), 황복사(皇福寺) 등이다. 이처럼 봉성사에 성전이 있었던 사실을 고려하면 절의 창건은 신충의 설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태종무열왕(603~661)을 기리는 원찰로 창건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776년(혜공왕 2) 절의 마른 밭에서 연(蓮)이 자라났는데, 밭의 연은 나라에 큰 병란이 일어날 징조라고 하였다. 이 해에 각간 대공(大恭)의 반란이 있었다. 912년(효공왕 12)에는 절의 외문(外門) 21칸에 까치가 집을 짓고 신라의 패망을 예시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후의 역사는 전혀 전하지 않는다. 조선시대 1530년(중종 25)에 완성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절은 부의 동쪽 4리에 있다.”라고 하였으므로 이 시기까지는 절의 존재가 확인된다. 절의 위치는 경주시 인왕동 옛 경주교육청 일대로 추정하고 있다. 2002년에 이곳에서 석제 그릇의 뚜껑이 출토되었는데, 여기에 ‘영태 2년(永泰二年, 766년) 봉성사(奉聖寺)’라는 명문이 있다.
· 집필자 : 한상길

관련자료

    • 내용
  • 위로
  • 불국토
    문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