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봉선사 |
|---|---|
| 한자 | 奉先寺 |
| 유형 | 사찰 |
| 키워드 | 법인국사 탄문, 운악사, 세조, 교종, 봉선사 동종 |
| 주소 |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봉선사길 32 |
| 종단정보 |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 |
| 관련인물 | 탄문(坦文, 900~975), 수진(守眞), 홍월초(洪月初), 화엄(華嚴), 운경(雲鏡). 능허(凌虛). 운허(耘虛, 1890~1980), 월운(月雲) |
조선시대 세조의 광릉을 수호하는 능침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의 교구본사
봉선사는 고려시대 969년(광종 20)에 법인국사(法印國師) 탄문(坦文, 900~975)이 운악사(雲岳寺)로 창건하였다. 탄문은 수행과 덕이 높아 고려 여러 국왕에게서 존경받았다. 968년(광종 19)에 국사, 왕사 제도가 신설되면서 국사는 혜거(惠居), 왕사는 탄문이 추대되었다. 조선시대 1469년(예종 1)에는 국가에서 절을 중창하여 세조의 능침사찰로 지정하였다. 예종이 선친(先親) 세조를 받들어 모시는 절이라는 뜻에서 봉선사라 하고, 현판도 직접 썼다. 이후 절은 불교계의 중추 역할을 담당하였다. 1550년(명종 5) 국가에서 선교(禪敎) 양종을 부활하여 각각의 대표 사찰을 지정하였는데, 선종은 봉은사(奉恩寺), 교종은 봉선사가 맡았다. 당시 주지는 수진(守眞)이었고, 봉은사 허응당(虛應堂) 보우(普雨)와 함께 조선 불교의 중흥에 앞장섰다. 그러나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고, 이듬해 낭혜(朗慧)가 중건하였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으로 다시 소실되었다가 1637년에 계민(戒敏)이 중건하였다. 1790년(정조 14)에는 국가에서 전국의 사찰을 관리하기 위해 5개의 5규정소(五糾正所) 사찰을 지정하였다. 봉선사는 함경도 일원의 사찰을 관장하였다. 1902년에는 원흥사(元興寺)가 전국 사찰의 대표인 대법산(大法山)이 되고, 주요 사찰 16곳을 중법산(中法山)으로 지정하였는데, 이때 절은 중법산이 되어 경기도 사찰을 관장하였다. 1906년에는 홍월초(洪月初, 1858~1934)가 머물며 1926년까지 꾸준히 가람을 중수하고 후학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그는 1902년의 원흥사 창건을 주관하였고, 1906년 이곳에 동국대학교의 전신인 명진학교를 설립하였던 당시 불교계의 대표자였다. 1911년 일제가 사찰령을 제정하고, 삼십본산 체제를 규정하였을 때는 본산이 되어 역시 경기 지역 사찰을 관장하였다. 1951년 한국전쟁의 와중에서 가람 14동 150칸의 전각이 모두 소실되었다. 1959년 화엄(華嚴)이 범종각을 짓고, 이후 1963년까지 운경(雲鏡, 1904~2000)과 능허(凌虛)가 절을 중건하였다. 1962년 대한불교조계종의 출범과 함께 제25교구 본사가 되어 경기도 북부 사찰을 관할하고 있다. 1970년에는 운허(耘虛, 1890~1980)가 대웅전을 중건하여 이름을 큰법당으로 하였고, 1977년에는 월운(月雲, 1929~2023)이 영각(靈閣) 등을 세웠다. 이후 가람을 확장하면서 지역사회의 다양한 복지 시설과 교육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가람은 큰법당, 관음전, 지장전, 삼성각, 조사전, 청풍루, 방적당, 운하당, 개건당, 다경실, 동별당, 서별실, 선열당 등의 많은 전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보문화재로는 1469년 봉선사로 중창할 때 조성한 동종과 1735년(영조 1)에 조성한 비로자나삼신괘불도 등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 집필자 : 한상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