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봉림사(터) |
|---|---|
| 한자 | 鳳林寺址 |
| 유형 | 사찰 |
| 키워드 | 진경대사 심희, 원감 현욱, 봉림산문, 진경대사탑비 |
| 주소 |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봉림동 165 |
| 관련인물 | 심희(審希), 원감 현욱(圓鑑玄昱) |
신라하대 심희가 창건한 구산선문 중의 하나인 봉림산문
봉림사는 통일신라 효공왕 대(897∼911)에 진경대사(眞鏡大師) 심희(審希)가 창건하였고, 현재는 터만 남아 있다. 심희는 절을 창건하여 스승 원감 현욱(圓鑑玄昱, 788~869)을 개산조(開山祖)로 추대하였다. 많은 제자가 모이면서 마침내 봉림산문(鳳林山門)을 형성하여 신라 하대 구산선문 중의 하나로 발전하였다. 심희는 9세에 출가하여 여주 혜목산(惠目山) 현욱에게 수학하였다. 이후 강원도 송계산과 설악산, 강릉 탁산사(託山寺) 등에서 탁마하였다. 봉림사 창건 이후 명성이 더욱 높아지자, 918년(경명왕 2)에는 경명왕이 왕궁으로 초빙하여 설법을 듣고 법응대사(法膺大師)라는 존호를 주었다. 924년(경명왕 8)에는 절에 심희의 사리탑 진경대사보월능공탑과 탑비를 조성하였다. 이후 고려, 조선시대까지 법등을 이어 나갔으나 임진왜란으로 전소되었다. 절의 폐사와 관련한 이야기가 전한다. 밀양에 살던 여주 이씨들이 봉림사가 명당임을 알고 경내에 불법으로 조상의 묘를 썼다. 이후 이씨 가문은 망하였고, 절도 폐사가 되었다고 한다. 이를 뒷받침하듯이 절터 인근에 ‘중사골’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1995년부터 1998년까지 모두 네 차례에 걸쳐 절터를 발굴하였다. 법당과 요사 등의 건물지를 다수 확인하였고,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세 차례 추가 발굴을 진행하여 사역의 규모를 확인하였다.
절터에는 진경대사보월능공탑과 탑비(보물), 3층 석탑(경남 유형문화유산)이 남아 있었는데 탑과 탑비는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석탑은 인근 상북초등학교에 있다. 사리탑은 통일신라 후기의 전형적인 8각 부도 양식으로 조각과 장식이 간결하다. 탑신에 비해 지붕돌이 큰 편이고, 전체 형태는 길쭉한 모습이다. 3층 석탑은 고려 전기에 조성하였는데 여러 차례 옮겨지면서 많이 파손되었다. 2층의 기단 중에서 위층 기단만 남았고, 1층 탑신도 두 조각으로 깨졌다. 2층 탑신에 문짝 모양의 조각이 있다. 꼭대기의 노반과 복발도 원래의 것이 아니다. 절에 있어야 할 성보가 초등학교 한구석에 있으니 더 이상의 보존을 기대하기 어렵다.
오랫동안 절터만 남아 있다가 1890년 무렵에 절터 입구에 법당을 신축하여 봉림사를 복원하였다.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의 말사로 대웅전, 보광전, 삼성각, 청소년수련관 등이 있다.
· 집필자 : 한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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