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복천암 |
|---|---|
| 한자 | 福泉庵 |
| 유형 | 사찰 |
| 키워드 | 증통, 도생, 자정, 신미, 공민왕, 수암화상탑, 학조등곡화상탑 |
| 주소 |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로 702-5 |
| 종단정보 |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 법주사의 산내암자 |
| 관련인물 | 신미(信眉), 사지(斯智), 학열(學悅), 학조(學祖), 수암(秀庵) |
조선 전기 불교의 중흥에 앞장섰던 신미가 중건한 사찰
복천암은 통일신라시대 720년(성덕왕 19)에 창건하였다. 고려시대 918년(태조 1)에 증통(證通)이, 1084년(선종 1)에 도생(導生)이, 1107년(예종 2)에 자정(慈淨)이 각각 중건하였다. 고려 후기에는 공민왕(1330~1374)이 ‘무량수(無量壽)’라는 어필을 하사하여 지금도 극락전의 현판으로 남아 있다. 지금은 법주사의 산내암자이지만 조선시대에는 ‘복천사’라는 독립된 사찰이었다. 1449년(세종 31)에 혜각존자(慧覺尊者) 신미(信眉)가 세종의 지원을 받아 중건하였다. 이듬해 1450년(문종 즉위년)에는 문종이 전각 단청에 필요한 물품을 하사하였다. 신미는 세종의 신망을 받아 궁궐에 내원당(內願堂)을 짓고 법회를 주관하였다. 1461년(세조 7)에는 국가에서 간경도감을 설치하여 훈민정음을 널리 유통시키기 위해 불전을 번역, 간행하였는데 신미는 이 일을 주관하였다. 1464년(세조 10) 세조가 이 절에 행차하자, 신미는 사지(斯智)·학열(學悅)·학조(學祖) 등과 함께 대설법회(大說法會)를 열었다. 당시 세조는 피부병을 앓았는데, 절 입구 개울에서 목욕한 후 깨끗이 나았다고 한다. 이 무렵에 유명한 속리산면 상판리의 ‘정이품송’ 전설이 생겨났다. 세조의 행렬이 소나무 아래를 지나게 되었는데, 가지가 아래로 처져 있어 가마가 가지에 걸리게 되었다. 세조가 “가마가 걸린다.”라고 말하자 소나무가 스스로 가지를 위로 들어 올렸다. 세조는 이 신기한 나무에 정이품 벼슬을 내렸다고 한다. 1733년(영조 9) 극락전이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737년(영조 13)에 탁융(卓融)이 중건하면서 아미타불과 관음보살, 대세지보살의 삼존상을 조성하였다. 1803년(순조 3)에는 취준(就俊)이 중수하였다. 1976년에는 극락전을 복원하였다.
가람은 극락전과 나한전, 복천선원, 요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보문화재로는 수암화상탑(秀庵和尙塔)과 학조등곡화상탑(學祖燈谷和尙塔)이 보물이고, 목조 아미타여래삼존불상, 삼세불도, 신중도 등이 충북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수암화상탑은 고려 팔각 원당형 탑의 양식을 계승하여 1480년(성종 11)에 조성하였다. 학조등곡화상탑은 수암화상탑과 같은 팔각 원당형인데 탑신이 구형(球形)인 점이 다르다. 중대석에 1514년(중종 9)에 조성하였다는 명문이 있다. 이 두 부도는 주인공과 연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 집필자 : 한상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