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대적광전 |
|---|---|
| 한자 | 大寂光殿 |
| 유형 | 문화예술 |
| 키워드 | 비로자나불, 비로전, 화엄전 |
| 세부장르 | 건축공예 |
| 관련장소 | 귀신사 대적광전, 해인사 대적광전 |
마하비로자나불(摩訶毘盧遮那佛)을 봉안한 주불전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봉안한 주불전으로 대광명전(大光明殿), 대적전(大寂殿), 비로전(毗盧殿), 화엄전(華嚴殿)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대적광전의 적광(寂光)은 번뇌를 끊고 적정(寂靜)한 자리에서 발하는 진지광명(眞智光明)을 의미한다. 대적광전은 종종 광(光)을 생략하고 대적전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대적(大寂)이란 여래가 일체의 산란한 마음을 여의고 드는 선정을 의미한다. 그리고 비로자나불을 모셨으나 주불전이 아닌 경우에는 그냥 비로전이라 부르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 화엄전으로 칭하기도 하는 것은 비로자나불이 경전상으로 볼 때 화엄장세계(華嚴藏世界)의 교주이기 때문이다.
비로자나불은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광명의 부처를 의미한다. 비로자나불은 때와 장소 및 사람 등에 따라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는 비로자나불이 잠시도 쉬지 않고 진리를 설파하여 일체중생을 제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적광전이나 대광명전이라는 명칭이 붙여질 경우에는 보통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노사나불(盧舍那佛)과 석가모니불을 봉안하게 된다. 반면 비로전(毘盧殿) 또는 화엄전(華嚴殿)이라고 할 때에는 보통 비로자나불만을 봉안하는 것을 상례로 삼고 있다. 불전 내부에 봉안된 비로자나불은 보통 지권인(智拳印)을 하고 결가부좌한 자세로 앉아 있다. 그러나 고려 말기부터는 이 지권인이 변형되어 왼손을 오른손으로 감싼 모습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비로자나불 뒤에는 비로자나 후불탱화가 봉안되는데, 이곳에는 보통 『화엄경』의 설법 장면이 주로 묘사된다.
우리나라의 대적광전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금산사 대적광전을 꼽을 수 있으나 1986년 화재로 소실되었고,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는 해인사 대적광전, 귀신사 대적광전, 기림사 대적광전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1985년 보물로 지정된 귀신사 대적광전은 규모는 작으나 세부에 옛 법식이 남아 있고 전면의 벽체 처리가 특이한 점이 주목되는 아름다운 불전이며, 1985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해인사 대적광전은 김규진이 쓴 편액 글씨와 고종 및 흥선대원군이 쓴 주련 글씨로 유명하다.
· 집필자 : 한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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