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대웅전 |
|---|---|
| 한자 | 大雄殿 |
| 유형 | 문화예술 |
| 키워드 | 삼보, 석가모니불 |
| 세부장르 | 건축공예 |
| 관련장소 | 통도사 대웅전, 법주사 대웅전 |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봉안한 주불전
우리나라 대다수 사찰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주불전으로서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봉안한다. 격을 높이기 위해 불법승(佛法僧)의 삼보(三寶)를 지칭하는 보(寶) 자를 추가하여 대웅보전(大雄寶殿)이라고도 하며, 석가모니를 깨달음의 왕 혹은 각성의 황제라고 여겼기 때문에 각황전(覺皇殿)이라고도 한다. 중국에서는 대웅전보다는 대웅보전을 많이 사용하고 있으며, 이를 대전(大殿) 또는 정전(正殿)이라고도 한다.
대웅(大雄)은 산스크리스트어인 마하비라(महावीर,, mahāvīra)를 중국어로 의역한 것으로 『법화경(法華經)』에서 석가모니를 위대한 영웅(英雄), 즉 대웅(大雄)이라고 일컬은 데서 유래하였다. 그것은 석가모니가 원각(圓覺)의 지혜를 갖추고 대천세계(大千世界)를 제압할 수 있기 때문에 불제자들이 존칭으로 붙인 것이다. 따라서 대웅전은 큰 힘이 있어서 도력과 법력으로 세상을 밝히는 영웅을 모신 전각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일반적으로 대웅전에는 수미산(須彌山)의 형태를 한 불단을 만들고 그 위의 석가모니불 양옆에 문수보살(文殊菩薩)과 보현보살(普賢菩薩)을 협시보살로 봉안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관음보살(觀音菩薩), 지장보살(地藏菩薩), 미륵보살(彌勒菩薩), 제화갈라보살(提和竭羅菩薩) 등을 협시보살로 봉안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통도사의 경우에는 대웅전에 불상이 없이 빈 불단만 놓여 있다. 진신사리가 불상을 완전히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대웅전 가운데 현재 대표적인 국가유산으로는 1962년 국보로 지정된 수덕사 대웅전, 1987년 보물로 지정된 법주사 대웅전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법주사 대웅전은 정면 7칸, 측면 4칸 규모의 2층 건물이며 내부에 모신 삼존불은 벽암 각성(碧巖覺性, 1575~1660)이 다시 지을 때 조성한 것으로, 가운데에 법신(法身)인 비로자나불, 왼쪽에 보신(報身)인 노사나불, 오른쪽에 화신(化身)인 석가모니불이 봉안되어 있다.
· 집필자 : 한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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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1308년 4월 13일 묵서이 기록은 수덕사 대웅전 대공 아랫면에 적힌 묵서로서, 주 내용은 ‘지대원년무신사월십삼일(至大元年戊申四月十三日) 지정(地定)’에 관한 것이다. 지정(地定)이란 건축물을 세우기 위하여 연약한 지반을 개량하거나 보강하는 건축공법을 뜻하는 것으로, 내용상 건물의 기초를 세우기 위한 작업이 이때 진행되었다는 것으로 추측된다. 묵서 후반부에 나열된 기록은 인명으로 추정된다. 이 기록을 통해 자세한 내용을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수덕사 대웅전 공사의 기초인 지정 작업이 1308년 4월 13일 무렵에 진행 또는 시작되었던 정황을 유추할 수 ... -
고려시대: 1308년 4월 17일 묵서이 기록은 장여(長舌) 바닥에 적혀 있는 묵서이다. 이 묵서가 적힌 부재에 대하여, 스기야마 노부조(衫山信三, 1906~1997)의 조사자료에는 “진사상(辰巳上) 삼소로첨차(三小累檐遮) 상단에 묵서 있음”이라고 적혀있으며, 임천(林泉, 1908~1965)의 글에서는 ‘중앙(中央) 마루 밑을 받친 장여의 바닥’이라고 하였다. 묵서는 1937년 판독문에 “대동량효가화상 동원천백 대지투중비(大棟梁曉假和尚 同願天白 大指偸中沘)”라 적혀 있지만, 우측 열부터 차례로 읽으면 “대동량 효가 대지투 화상 중비 동원천백(大棟梁 曉假 大指偸 和... -
고려시대: 1308년 4월 24일 묵서이 기록은 수덕사 대웅전 화반 아래에 끼우는 부재의 상·하면(上·下面)에 적힌 묵서로, 고려시대 묵서 중 가장 내용이 길다. 이 묵서가 적힌 부재에 대해서, 스기야마 노부조(衫山信三, 1906~1997) 기록에는 ‘상량문 일호표(上梁文 一號表)’라는 주기와 함께 ‘화반(華盤) 밑에 있는 것’이라 하였다. 묵서의 내용은 "지대원년(至大元年) 4월 24일" 수덕사 조성에 참여한 대중의 이름을 적은 것으로 추정된다. 기록에 언급된 대동량(大棟梁) 효가(曉假)와 대지투(유)(大指偸(諭)) 중비(中批)는 4월 17일 입주(立柱) 묵서에... -
고려시대: 1309년 10월 11일 묵서이 기록은 장여(長舌) 모양의 부재에 적혀 있다. 기록에는 “지대이년기유(至大二年己酉)”라 하여, 1309년(고려 충선왕 1)에 작성된 것을 알 수 있다. 이 기록은 수덕사 대웅전 건립과 관련된 1308년보다 1년 후에 작성된 것으로, 무엇을 위한 기록인지는 알 수 없지만 묵서 말미에 “수덕사(修德社)”라는 사찰명이 적혀 있다. 사찰 명칭에 “사(社)”를 쓴 것은 1308년 대웅전 상량문 기록에서 “사(寺)”로 적은 것과 다른 것으로서, 당시 사찰을 “寺”, 또는 “社”로 병기하였던 추세와 관련이 있다. 이 기록은 스기야마 노... -
조선시대: 1761년 중수기이 기록은 1761년 법당(수덕사 대웅전) 중수문으로, 백지에 묵서로 쓰인 형태로 전한다. 원래는 건축 부재에 묵서되어 있던 것을 종이에 옮겨적은 것으로 추정된다. 내용은 ‘건륭 16년에 대웅전 법당을 중수한다’는 것과 이 불사에 참여한 인물을 적고 있다. 기록에는 “건륭십육년신사(乾隆十六年辛巳)”라 적혀 있지만, 건륭 16년은 ‘신미(辛未)’년에 해당하여 연대와 간지가 일치하지 않는다. 이는 건축 부재의 묵서를 옮겨 적는 과정에서 ‘이십(卄)’을 ‘십(十)’으로 잘못 옮기면서 생긴 오류일 가능성이 있다. 기록의 내용이 상세하... -
조선시대: 1803년 풍판 묵서이 기록은 수덕사 대웅전 풍판(風板)에 적혀 있던 묵서로, 스기야마 노부조(衫山信三, 1906~1997)의 조사 기록에 따르면 ‘동측박풍(東側搏風) 하부의 중앙부(中央部) 위에 묵서되어 있다’고 하였다. 이 기록은 1937년에 발견된 것으로, 풍판[禪版]은 이 해 공사 때 제거되었다고 한다. 내용은 1803년 수덕사 대웅전 배면 부연 수리와 좌·우 측면 풍판의 신설에 관한 것으로, 대목(大木)으로 참여한 인물과 시주자 명칭이 기록되어 있다. 원문 嘉慶八年癸亥三月日德山修德寺成造禪判記 法堂臺間重修幷後面扶椽幷東西邊搏風風遮新重修也 ... -
조선시대: 1804년 오중수·단청기이 기록은 1804년 2월 수덕사 대웅전 5중수와 이듬해인 1805년 6월 단청불사에 대한 내용을 담은 현판이다. 현판에는 “가경9년갑자이월(嘉慶九年甲子二月)”에 법당을 다섯 번째로 중수했다는 내용과 “을축년유월단청(乙丑年六月丹靑)”이라는 간략한 불사 내용이 적혀 있다. 현판 내용의 대부분은 이 불사에 참여한 시주자의 명단으로, 약 50여명의 인명이 묵서되었다. 묵서 말미에는 목수(木手) 찬유(賛有)와 화원(畫員) 석징(釋澄), 박필장(朴畢長) 형제 등의 이름이 적혀 있으며, 화주질(化主秩), 별좌질(別座秩)에는 이 불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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