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아공 |
|---|---|
| 한자 | 我空 |
| 산스크리트어 | ātma-śūnyatā |
| 팔리어 | atta-suññatā |
| 티베트어 | bdag stong pa nyid |
| 유형 | 용어 |
| 키워드 | 무아, 아공법유 |
오온으로 구성된 인간에게 자아라는 실체가 없음을 나타내는 말
오온(五蘊)으로 구성된 인간에게 자아라는 실체가 없음을 나타내는 말로, 인공(人空)·인무아(人無我) 등이라고도 한다. ‘아’는 자아라는 뜻으로 영원불변의 실체인 ‘아트만(ātman)’을 의미하기도 하고, 오온으로 구성된 ‘나’를 지칭하기도 한다. ‘공(śūnya)’은 텅 비어 있다는 뜻으로 자성(自性, svabhāva) 또는 실체(實體, dravya) 등이 실재하지 않거나 ‘나’라는 독립적인 존재가 없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인도철학에서 자아를 나타내는 대표적 용어는 아트만(ātman, attan)이다. 자아에 대해 논의하는 『상유타 니카야(Saṁyutta-Nikāya)』(22.59)의 「무아상경(無我相經, Anattalakkhaṇasutta)」에서 붓다는 자아에 대해 정의를 내린 적도 없고, 또한 자아는 곧 온(蘊, skandha, khandha)이라고 분명히 언급하지도 않았다. 이 경은 모습[色, rūpa]·느낌[受, vedanā]·생각[想, saññā]·의도[行, saṅkhāra]·분별[識, viññāṇa]의 오온에 대한 일정 형식의 질의와 응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각각은 무상하고(anicca), 불만족스러우며(dukkha), 자아가 아닌 것(anattan)이므로 이들 각각이 ‘내 것’도 아니고, ‘나’도 아니고, ‘나의 아트만’도 아니라고 설명한다. 곧 자아의 유무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자아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바로잡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니카야 도처에 있는 여러 유형의 무아에 대한 논의에서도 확인된다.
니카야에는 아트만이 ‘공’하다고 직접 언급한 경도 있다. 사람들이 세상이 공하다고 하는데 어떤 면에서 세상이 공하냐는 질문에 붓다는 “자아와 자아에 속한 것이 공하기 때문에 세상은 공한 것이다.”(SN.35.85)라고 답한다. 니카야에서 공은 주로 ‘비어 있음’을 의미하는데, 무아에 대한 교설 가운데 공이라는 용어로 설명된 것은 드물며, 다른 단어를 수식하여 명상 수행에 적합한 고립된 장소나 환경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초기불교에서 ‘공’이라는 표현이 ‘무아’보다 효과적이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아함경(阿含經)에는 ‘아공(我空)’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이를 통해 대승의 공 사상이 아함경의 역경 시기에 유입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관학파(Mādhyamika)에서 주요 개념으로 등장하는 공성(空性, śūñyatā)은 니카야에도 나타나지만 중관 사상처럼 이론적으로 체계화된 것은 아니다. 한 예로 『파티삼비다마가(Paṭisambhidāmagga, 無礙解道)』에서는 무아를 관하는 것(anattānupassanā)과 공을 관하는 것(suññatānupassanā)은 표현만 다를 뿐 뜻은 동일하다고 하였다. 한편 『대승중관석론(大乘中觀釋論)』 권11에서는 “공이라고 함은 자아가 공함을 말하는 것이지, 사람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말해질 수 없는 것[不可說]이기 때문에 공이라고 이름한다.”라고 하였다.
초기불교 니카야의 「무아상경」에서는 자아의 유무보다는 기존의 자아에 대한 잘못된 관념을 부정하는 것이고, 자아가 공(suññā)하다고 할 때는 비어 있다는 의미이다. 반면 『파티삼비다마가』와 같이 소부(小部, Kuddaka-Nikāya)에 속하는 후기 니카야에서는 무아가 공과 같은 의미로도 나타난다.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는 아공법유(我空法有)를 주장하는 반면, 대승불교에서는 아공과 법공(法空)을 말한다.
· 집필자 : 최경아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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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러하고 그러하다. 네가 말한 것과 같다. 중생은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내외가 공하며 유무가 공한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나라는 아(我)가 공하며, 지견(知見)이 공한 것임을 알아야 하며, 4선이 공하며, 4등이 공하며, 4공정 또한 공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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