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왕실불교 |
|---|---|
| 한자 | 王室佛敎 |
| 유형 | 역사 |
| 키워드 | 원당, 축성법회, 정업원, 능침사 |
| 시대 | 신라~조선시대 |
신라~조선시대에 왕실에서 행해진 전반적인 불교신앙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왕실이 주도하여 설행한 각종 법회 및 왕자·비빈·후궁들의 불교신앙을 말한다.
4세기 후반 중국에서 불교를 수용할 때 삼국은 공통적으로 왕실과 귀족이 앞장서서 불교를 신앙하였다. 이후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에 왕실의 불교신앙은 더욱 강화되었다. 궁궐 내에 법당이 설치되었고 왕실이 주도하여 기신재(忌晨齋), 반승법회(飯僧法會), 소재도량(消災道場), 축성법회(祝聖法會) 등 여러 형태의 불교의식을 설행하여 나라의 안녕과 왕실의 수복(壽福)을 기원하였다.
유교 이념을 기반으로 건국한 조선시대에도 왕실의 불교신앙은 지속되었지만 그 형식은 변화되었다. 고려시대 이래 도성 내에 설치하여 왕실 비빈 및 후궁들이 주도적으로 운영했던 비구니 사찰 정업원(淨業院)은 조정 대신과 유생들의 요구에 따라 폐지와 복원을 반복하다가 1612년(선조 40)에 완전히 폐지되었다. 하지만 17세기 이후에는 도성 밖 사찰에서 신앙생활을 이어 갔다. 망자를 위한 칠칠재로서 수륙재(水陸齋)의 경우, 태조·정종 대에는 고려시대의 불교의식을 그대로 수용하였고, 태종비인 원경왕후 국상 이후에는 의식이 간소해졌지만, 연산군 대 인수대비의 상례까지 이어졌다. 조정 대신들의 반대에 부딪혀 연산군 대 이후 도성 내에서 행하는 왕실의 불교의식은 거의 폐지되었지만, 지방의 명찰을 왕실의 원당(願堂)으로 지정하여 기도를 지속하였다. 이처럼 도성 내에서 이루어지던 왕실의 불교신앙이 조정 대신의 반대로 도성 밖이나 지방의 사찰로 옮겨지기는 했으나, 이는 왕실의 불교신앙이 중지된 것이 아니라 그 신앙 방식이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조선 후기 왕실에서는 전국 곳곳에 원당을 지정하여 망자를 위한 수륙재 및 임금의 수복을 기원하는 축성법회 등을 이어 갔다. 왕실 원당으로는 왕릉 주인의 추복 시설로 설치된 능침사(陵寢寺),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위축원당(爲祝願堂), 태실의 보호 관리를 담당한 태실수호사찰(胎室守護寺刹) 등이 있었다.
· 집필자 : 이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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