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호국불교

한글호국불교
한자護國佛敎
유형역사
키워드금광명도량, 인왕도량, 대장경 간행, 의승병
시대삼국~조선
불교신앙으로 국가를 보호한다는 이념으로 행한 각종 법회, 불사 및 의승병 활동
삼국시대 불교 전래 이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불교신앙을 통해 국가를 지키고자 하는 여러 형태의 호국법회, 대장경 간행 불사, 의승병 참전 등의 각종 활동을 말한다. 삼국시대에 국왕이 주도하여 불교를 처음 받아들이면서 국가의 번영과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법회를 개최하였으므로, 불교 전래 초기부터 불교신앙을 통해 국가를 보호하고자 하는 호국불교 이념이 정착하였다. 삼국시대 신라의 호국불교 이념으로, 전쟁에서 물러서지 말고 싸우라는 ‘임전무퇴(臨戰無退)’의 가르침이 있다. 중국에서 유학한 원광 법사가 600년(진평왕 22)에 귀국하여 대작갑사(운문사)에서 수행하고 있을 때 화랑이 찾아와 가르침을 청하자, 세속인이 지켜야 할 다섯 가지 계율인 세속오계(世俗五戒)를 주었는데, 그 네 번째 가르침이 임전무퇴이다. 이 가르침이 우리나라 호국불교의 대표적 이념으로 전승되었다. 통일신라시대 이래 천재지변, 외적의 침입, 내란 등 국가의 중대사가 일어날 때마다 국가 주도의 호국법회를 설행하였다. 그 대표적인 법회가 인왕백고좌도량(仁王百高座道場)이다. 이 법회는 고구려에서 신라로 귀화한 혜량(惠亮)이 처음 개설하였는데, 『인왕반야경(仁王般若經)』의 「호국품(護國品)」에서 “갖가지 재난과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국왕이 이 경을 하루에 두 번씩 독송할 것”을 설한 가르침에 따라 국왕이 시주자가 되어 개설한 법회이다. 이후 인왕백고좌도량은 수시로 설행되었다. 고려시대 호국법회는 더욱 주술적으로 발전하여 금광명도량(金光明道場)·금강경도량(金剛經道場)·관정도량(灌頂道場)·제석도량(帝釋道場)·약사도량(藥師道場)·문두루도량(文豆婁道場)·인왕도량(仁王道場)·무능승도량(無能勝道場)·마리지천도량(摩利支天道場)·염만덕가위노왕신주도량(閻曼德迦威怒王神呪道場)·공작명왕도량(孔雀明王道場) 등의 명칭으로 설행되었다. 고려시대 호국불교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고려대장경 조성이다. 1010년(현종 1) 거란군이 침략해 오자, 부처님의 위신력을 빌려 외적을 물리치고자 대장경을 제작하였는데, 1011년에 판각을 시작하여 수십 년에 걸쳐 ‘초조대장경’을 완성하였다. 그런데 1232년(고종 19) 몽골군이 침입하여 초조대장경 목판을 불태우자, 1236년(고종 23)부터 다시 판각을 시작하여 1251년(고종 38)에 ‘재조대장경’을 완성하였다. 전란 중에 대장경을 판각한 것은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외적의 침입을 막아 보고자 한 호국불교 이념의 발로였다. 조선시대에도 고려의 전통대로 국가가 주도하는 호국법회가 설행되었으나 유교 정치 이념에 따라 점차 축소되었다. 하지만 호국불교 이념은 조금도 꺾이지 않았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전국에서 수천 명의 승려들이 무기를 들고 의승병으로 참전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에도 수천 명의 승려들이 항마군(降魔軍)을 조직하여 남한산성에 고립되어 있던 인조를 구출하기 위해 궐기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사례를 통해 한국불교의 호국 이념이 전승되었음을 알 수 있고, 오늘날에도 전국 사찰에서는 매일 새벽에 스님들이 「행선축원문(行禪祝願文)」의 ‘국계안녕병혁소(國界安寧兵革消)’, 즉 ‘나라가 평안하고 전쟁이 없기를 기원’하는 발원문을 염송하고 있다.
· 집필자 : 이종수

관련자료

    • 내용
  • 위로
  • 불국토
    문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