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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불정책

한글억불정책
한자抑佛政策
유형역사
키워드숭유억불, 종파 통폐합, 승록사 폐지, 승과 폐지, 사원노비 속공
시대조선
조선시대에 중앙 정치 무대에서 불교 권력을 박탈하고 사원에 대한 국가의 경제적 지원을 축소한 정책
삼국시대 이래 불교계가 국가의 주요한 직책을 차지하고 막대한 경제적 지원을 받았으나, 조선 건국 이후 국가에서 점차적으로 중앙의 불교 권력을 박탈하고 경제적 지원마저 크게 축소시켰다. 다만 양민의 불교신앙을 억압하지는 않았으므로 억불정책이라는 용어는 정치적 정책에 한정되어 사용될 필요가 있다. 삼국시대에 전래된 이래 고려시대까지 불교는 왕실과 귀족의 절대적 지원을 받으며 막강한 정치적 권한과 거대한 경제적 부(富)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1392년 건국한 조선은 유학의 성리학적 가치관을 정치 이념으로 내세웠다. 권력을 잡은 성리학자들은 중앙 권력에서 불교계의 권한을 박탈하고, 사찰에 부여한 수조권(收租權)을 없애고자 했다. 뿐만 아니라 사찰 소유의 노비를 해방하거나 국가 소유로 속공하여 사원 경제력을 급격히 약화시켰다. 국가의 억불정책은 16세기 명종 대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었다. 그 사이 세조 대에 간경도감(刊經都監)을 설치하여 불서(佛書)를 언해·간행하였으며, 명종 대에 문정왕후가 승과(僧科)를 복원하며 불교 중흥정책을 펼치기도 했으나, 그들이 사망한 이후 억불정책이 지속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억불이라고 할 만한 정책은 거의 보이지 않으나, 대동법과 균역법이 전국에 실시된 18세기 중반 이후 지방 사찰의 잡역이 늘어나고 군역에 편재된 승려의 신분이 하락함으로써 불교계에 큰 타격을 주었다. 조선 전기 국가의 주요 억불정책은 다음과 같다. 태종 대 : 사원 노비 속공(屬公), 국가 지원 사찰을 242개로 축소, 11개 종파를 7개 종파로 통폐합. 세종 대 : 승록사(僧錄司) 폐지, 7개 종파를 선종과 교종으로 통폐합. 성종 대 : 도성 내 염불소(念佛所) 폐지, 양반가 부녀의 출가 금지, 아내가 있는 대처승(帶妻僧)의 환속. 연산군 대 : 흥천사와 흥덕사에 있던 선종과 교종의 행정기구를 도성 밖에 있는 청계사로 이관, 도성 내 사찰 폐사. 중종 대 : 승과(僧科) 폐지, 국가 지원의 사원 토지를 향교에 배속, 능침사를 제외한 사찰 노비 몰수, 왕실의 도성 내 기신재(忌晨齋) 혁파, 승려의 도성 출입 금지를 『대전후속록(大典後續錄)』에 성문화.
· 집필자 : 이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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