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축성법회 |
|---|---|
| 한자 | 祝聖法會 |
| 유형 | 역사 |
| 키워드 | 축도법회, 축성도량, 원당, 자복사, 삼전패 |
| 시대 | 고려~조선 |
국왕의 수명 연장을 기원하는 불교 법회의식
국왕의 생일에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법회에서 시작하여 고려 후기부터 일상적인 법회로 정착하였다.
축도법회(祝禱法會)라고도 불리는데, 고려 문종 때 그 절차가 정해졌다고 하지만 자세한 것은 전하지 않는다. 이 법회는 외제석원(外帝釋院)에서 7일 동안 기도를 올리고, 문무백관은 흥국사(興國寺)에서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축수(祝壽)의식을 행하였다. 4도호부(都護府)와 8목(牧)은 각각 소재하는 지역의 자복사(資福寺)에서 법회를 열었다.
고려 후기부터 국왕의 생일뿐만 아니라 일상적으로 건강과 수복을 기원하는 축성도량(祝聖道場)이 전국 사원에서 설행되었다. 『고려사』에 따르면, 1157년(의종 11)에 점쟁이 영의(榮儀)가 “왕이 장수를 누리시려면 반드시 천제석(天帝釋)과 관음보살(觀音菩薩)을 섬기셔야 합니다.”라고 아뢰니, 왕이 그 두 보살상을 그려 전국의 사원에 나누어 보내고 법회를 열도록 하면서 축성법회라 부르게 했다. 또한 수좌(首座)에 올랐던 승려 관오(觀奧, 1096~1158)의 묘지명에 “원당인 충주 덕주사(德周寺)에서 산승(山僧)을 소집해 항상 축성도량을 열었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기록을 통해 13세기 중엽 이후 축성법회가 상례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왕실 원당으로 불리는 사찰이 전국 곳곳에 설치되어 국왕과 왕실의 수복을 기원하였다. 전국 사찰 법당에는 국왕·왕비·세자의 수복(壽福)을 기원하는 ‘주상전하수만세(主上殿下壽萬歲) 왕비전하수제년(王妃殿下壽齊年) 세자저하수천추(世子邸下壽千秋)’라는 삼전패(三殿牌)가 봉안되었고, 곳곳에 국왕과 왕실의 수복을 기원하는 위축원당(爲祝願堂)이 설치되어 축성법회가 설행되었다.
· 집필자 : 이종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