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대서성 |
|---|---|
| 한자 | 大書省 |
| 유형 | 역사 |
| 키워드 | 승관, 소서성, 국통, 도유나, 대도서, 정법전 |
| 시대 | 신라 |
신라 진흥왕 대에 처음 설립된 승관의 하나
신라 승관(僧官)의 하나로서, 진흥왕 대에는 정원이 1명이었으나 진덕여왕 대에 1명을 더하여 2명이 되었다.
신라시대 승관제도는 진흥왕 대부터 확인되는데, 550년(진흥왕 11)에 대서성과 소서성(小書省), 551년에는 국통(國統)과 도유나(都維那) 등을 설치하였다. 그 후 624년(진평왕 46)에 대도서(大道署)가 신설되었고, 651년(진덕여왕 5)에 국왕 직속 관부의 실무 직제로 대사(大舍)·사(史) 등을 두기 시작하였으며, 785년(원성왕 1)에 독립된 승정 기구로 정법전(政法典)을 설치하여 여기에 승관을 두었다.
대서성은 진흥왕 대에는 정원이 1명이었으나 진덕여왕 대에 1명을 더하여 2명이 되었다. 대서성에 임명된 법명이 『삼국사기』에 3회, 『삼국유사』에 1회 보인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진흥왕이 안장 법사(安臧法師)를 대서성으로 삼았고, 669년(문무왕 9) 봄 정월에 신혜 법사(信惠法師)를, 674년(문무왕 14) 9월에 의안 법사(義安法師)를 대서성으로 삼았다. 『삼국유사』 흥법(興法) 제3 원종흥법염촉멸신조(原宗興法厭觸滅身條)에서는 대서성 진노 법사(眞怒法師)가 확인된다.
대서성의 성격에 대하여 학자들 의견이 다르다. 1950년대에 왕실의 자문을 담당하는 승관으로 보는 견해가 제시되었고, 1990년대에 비문과 문서 등의 작성과 각자(刻字)를 담당하는 승관으로 보는 견해가 있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문서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승관으로 보는 견해와 불사(佛事)를 감독하는 승관으로 보는 견해 등이 제시되었다. 고려시대 기록에서는 ‘대서성’이 보이지 않으므로 신라시대에만 있었던 승관으로 여겨진다.
· 집필자 : 이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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