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진종설

한글진종설
한자眞種說
유형역사
키워드법흥왕, 진평왕, 왕즉불, 성골
시대신라
국왕이 석가모니와 같은 종족이라고 하여 국왕이 곧 부처라고 주장한 설
신라시대에 국왕을 비롯한 왕족이 부처와 동등한 권위를 가진 존재임을 나타내기 위해 석가모니와 같은 종족이라고 주장하였다. 신라 진평왕(眞平王)은 자신의 이름을 석가모니의 아버지 이름인 백정(白淨)으로 바꾸고, 부인의 이름을 석가모니 어머니의 이름인 마야부인(摩耶夫人)이라고 지었다. 그리고 그 동생의 이름인 백반(伯飯)과 국반(國飯)도 석가모니 삼촌의 이름에서 따왔다. 이는 신라 왕실이 찰제리(刹帝利: 크샤트리아) 계급인 석가모니와 같은 종족임을 강조하여 왕실의 골품을 불교적으로 성화(聖化)시키고, 같은 진골(眞骨)인 경주 김씨와 차별화한 것이다. 또한 찰제리와 같은 종족인 국왕이 곧 부처라는 의미의 왕즉불(王卽佛) 사상에 따라 ‘진(眞)’ 자를 붙인 진흥-진지-진평으로 이어지는 왕명을 지었다. 이러한 진종 의식에 따라 왕실은 스스로를 성골(聖骨)이라고 불렀는데, 성골이 성립한 시점에 대해서는 법흥왕 대 설과 진평왕 대 설로 의견이 갈려 있다. 두 견해 가운데 『삼국유사』 권1 왕력(王曆)에서 선덕왕의 즉위 배경과 관련하여 “성골의 남자가 모두 사라졌다(聖骨男盡)”라고 언급한 기록에서 볼 때, 진평왕 재위 시기에 정치적 목적에서 그 아비인 동륜(銅輪) 직계의 소가계(小家系) 집단을 성골로 특화함으로써 성립되었다는 진평왕 대 설이 더 유력하다. 성골의 성립 시점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려 있으나, 진덕여왕을 고비로 하여 왕통(王統)이 성골에서 진골로 바뀌었다는 점은 연구자 대부분이 동의하고 있다.
· 집필자 : 이종수

관련자료

    • 내용
  • 위로
  • 불국토
    문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