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무심선 |
|---|---|
| 한자 | 無心禪 |
| 유형 | 역사 |
| 키워드 | 백운경한, 임제종, 석옥청공 |
| 시대 | 고려 말 |
고려 말 중국 임제종 석옥 청공에게 인가를 받고 돌아온 백운 경한의 선
고려 말 원나라에 유학하여 임제종(臨濟宗)의 종사(宗師)인 석옥 청공(1272~1352)에게 인가(印可)를 받고 돌아온 백운 경한(白雲景閑, 1298~1374)의 특징적인 수행 경지를 가리킨다.
고려 후기에 중국 임제종의 간화선(看話禪) 수행법이 전래되어 확산되었고, 원 간섭기에 이르러 여러 선사가 원나라 임제종의 종사에게 인가를 받고 돌아와 명성과 권위를 얻었다. 그 가운데 태고 보우(1301~1382), 나옹 혜근(1320~1376), 백운 경한이 대표적이었다. 태고 보우와 백운 경한은 석옥 청공에게 인가받았고, 나옹 혜근은 평산 처림(1279~1361)에게 인가받았다.
백운 선사가 처음 석옥 청공을 만났을 때 육조 혜능(638~713)의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며 그대의 마음이 움직인 것’이라는 뜻과 조주 종심(778~897)의 ‘개에게 불성이 없다’는 화두에 대해 문답을 했으나 크게 깨치지 못하였다. 그 후 멀리 길을 떠나 유행하다가 다시 돌아와 수행하던 어느 날 무심(無心) 무념(無念)을 깨달으니, 석옥 청공이 “그대가 기뻐하니 나도 기쁘고, 내가 기뻐하니 시방의 부처님과 보살님들도 기뻐하고 기뻐하실 것이다.”라며 인가하였다.
고려에 귀국한 백운 선사가 좌선하던 도중에 영가 현각(665~713)의 『증도가(證道歌)』에 나오는 “망상을 없애지 않고 참됨을 찾지도 않으며, 무명의 실다운 성품이 곧 불성이요, 허깨비 빈 몸이 곧 법신”이라는 구절에서 큰 무심의 깨달음을 얻었다. 이로부터 그의 선법(禪法)을 ‘무심선’이라 하였다.
백운 선사의 무심선에 대한 평가는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중국 조사선의 정통이 무심종지(無心宗旨)이고 석옥 청공이 그 가풍을 이어받았으므로 백운 선사야말로 석옥 청공으로부터 내려온 임제종의 정통이라는 견해이다. 다른 하나는 백운 선사의 선이 무심선이라는 데는 동의하지만 조사선의 정통은 무심선이 아니라 간화선이므로 백운 선사만이 임제종의 정통을 계승했다는 데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백운 선사의 무심선은 간화선을 통해 깨달음에 이른 상태라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에서 본다면 백운 선사의 무심선은 선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이룬 근본적이고 최종적인 경지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 집필자 : 이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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