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회암 정혜 |
|---|---|
| 한자 | 晦庵定慧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선원집도서과기, 제경론소구절, 보광 원민, 모운 진언, 청암사 |
| 시대 | 조선 후기 |
| 출생 | 1685년 |
| 입적 | 1741년 |
| 호 | 회암(晦庵) |
| 주요 주석처 | 청암사(靑巖寺) 등 |
| 비 소재지 | 불령산(佛靈山) 쌍계사(雙溪寺) |
조선 후기 부휴계 보광 원민의 법맥을 잇고 『제경론소구절(諸經論疏句絶)』 등을 저술한 교학 승려
17~18세기에 청암사(靑巖寺) 등을 중심으로 활동한 승려로, 부휴계 교학 정통을 이은 보광 원민(葆光圓旻)의 법맥을 이었다. 여러 주석서를 저술하였으며, 모운 진언(暮雲震言, 1622~1703) 이후 부휴계를 대표하는 교학 종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대사의 법명은 정혜(定慧), 법호는 회암(晦庵)이다. 속성은 김(金)씨로 1685년(숙종 11) 5월 초이일에 경상남도 창원에서 태어났다.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9세의 나이로 범어사(梵魚寺) 자수 선사(自守禪師)에게 출가하였다. 자수가 정혜의 비범함을 알아보고 충허 장로(冲虛長老)에게 보내니, 충허는 대사를 데리고 가야산(伽倻山)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모운 진언의 제자인 보광 원민에게 경전을 배우고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1711년(숙종 37)에 원민의 법맥을 잇고 율사(栗寺)에서 강석을 열었다. 곧 법맥은 ‘부휴 선수(浮休善修, 1543~1615)-벽암 각성(碧巖覺性, 1575~1660)-모운 진언-보광 원민-회암 정혜’로 이어진다. 강석을 연 후에도 환성지안(喚醒志安, 1664~1729) 등 여러 고승을 두루 방문하여 공부하고, 금강산에 들어가 참선에 정진하기도 하였다. 요청을 받아 석왕사(釋王寺)‧명봉사(鳴鳳寺)‧청암사‧벽송사(碧松寺) 등 여러 사찰에서 강의하였다.
말년에는 청암사에 주석하다가 1741년(영조 17) 5월 20일에 세속 나이 57세, 법랍(法臘) 41년으로 입적하였다. 다비(茶毗) 후에 영골(靈骨) 2편(片)을 얻어서 지리산 의신동(義神洞: 東庵)과 불령산(佛靈山) 청암사 기슭에 탑을 세웠다. 그리고 청암사, 벽송사 등에 영당을 세우고 진영을 봉안했다고 하나 현전하지 않는다. 현재 청암사에 봉안되어 있는 진영은 19세기 중엽에 그려진 것이다. 불령산 쌍계사(雙溪寺)에 비문이 있다. 저술로 『화엄경소은과(華嚴經疏隱科)』, 『선원집도서착병(禪源集都序着柄: 선원집도서과기)』, 『별행록사기화족(別行錄私記畵足: 법집별행록절요사기해)』, 『제경론소구절(諸經論疏句絶)』 등이 있다.
대사가 법맥을 이은 계파는 부휴계의 주류 계파는 아니지만, 교학에 정통한 학맥이다. 특히 진언은 화엄(華嚴)에 뛰어났다고 한다. 대사 또한 화엄에 조예가 깊어 사람들이 그를 화엄종 5조인 종밀(宗密, 780~841)의 후신으로 받들며 ‘화엄종 회암장로’라 칭했다. 18세기 교학 종장으로 이름난 연담 유일(蓮潭有一, 1720~1799) 또한 “『선원제전집도서(禪源諸詮集都序)』와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法集別行錄節要幷入私記)』에 관한 주석서는 회암 정혜의 것이 가장 뛰어나다.”라고 평하였다.
· 집필자 : 불교백과1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