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화악 지탁 |
|---|---|
| 한자 | 華嶽知濯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삼봉집 |
| 시대 | 조선 후기 |
| 출생 | 1750년 |
| 입적 | 1839년 |
| 호 | 화악(華嶽), 삼봉(三峰) |
조선 후기 한암의 법맥을 잇고 『삼봉집』을 저술한 승려
18~19세기에 주로 금강산을 중심으로 활동한 승려로, 편양파 한암(寒巖)의 법맥을 이었다. 『삼봉집(三峰集)』을 저술하였다.
대사의 이름은 지탁(知濯), 법호는 화악(華嶽) 또는 삼봉(三峰)이다. 삼봉은 삼각산에 오래 살았다 하여 붙여진 호이다. 속성은 청주(淸州) 한(韓)씨로 아버지는 상덕(尙德)이다. 1750년(영조 26)에 태어났다. 황해도 배천 견불산(見佛山) 강서사(江西寺) 성붕 선사(性鵬禪師)에게 출가하였다. 이후 한암의 법맥을 이으니, ‘청허 휴정(淸虛休靜, 1520~1604)-편양 언기(鞭羊彦機, 1581~1644)-풍담 의심(楓潭義諶, 1592~1655)-월담 설제(月潭雪霽, 1632~1704)-환성 지안(喚醒志安, 1664~1729)-함월 해원(涵月海源, 1691~1770)-완월 궤홍(玩月軌泓, 1714~1770)-한암’으로 이어지는 편양파 승려이다. 금강산과 보개산(寶蓋山)에 오래 머물렀으며, 『수능엄경(首楞嚴經)』을 만 번 읽고 깨달음을 얻었다. 불경 외의 학문에도 해박하고 문장이 뛰어나 황해도관찰사‧호조판서‧영의정 등을 역임한 이상황(李相璜, 1763~1841)과 대제학을 지낸 문신이자 순조의 장인인 김조순(金祖淳, 1765~1832), 실학자이자 서화가인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 등 유학자들과도 깊이 교류하였다.
1807년(순조 7)에는 통도사(通度寺) 보광전(普光殿) 창건 불사(佛事)에 참여하였고, 말년에는 금강산 유점사(楡岾寺)와 장안사(長安寺)에서 수행하였다. 1839년(헌종 5) 5월 5일 오시(午時: 오전 11시~오후 1시)에 금강산 장안사 지장암(地藏庵)에서 임종게(臨終偈)를 남기고 입적하였다. 임종게는 다음과 같다. “오랜 세월 모든 선행 낱낱이 닦아/ 만법은 하나로 하나는 공(空)으로 돌아가네// 자신의 본래 일도 마치지 못하였는데/ 90년 세월이 꿈결에 흘렀네.”
법을 전한 제자가 100여 명에 이르는데, 그중 가장 뛰어난 자는 화담 경화(華潭敬和)이다. 저술로는 『풍사록(風使錄)』과 『삼봉집』이 있는데, 『풍사록』은 도둑맞아 현재 전하지 않는다. 통도사와 문경 김룡사(金龍寺)에 진영이 봉안되어 있다.
· 집필자 : 불교백과1팀
관련기사
-
『조상경』의 성립과 변천문헌 기록과 현존하는 유물을 통해 볼 때, 한국 불교의 복장의식은 늦어도 12~13세기에는 규범화된 것으로 보인다. 이규보(李奎報, 1168~1241)의 「낙산관음복장수보문(洛山觀音腹藏修補文)」과 민지(閔漬, 1248~1326)의 「국청사금당주불석가여래사리영이기(國淸寺金堂主佛釋迦如來舍利靈異記)에 따르면, 당시 복장의식에서도 사리(舍利), 오향(五香), 오약(五藥), 비단 주머니 등의 물목이 언급되고 있으며, 고려 중후기의 복장유물에서도 이러한 물목이 일정하게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복장의식의 정형화 과정에는 의... -
『조상경』의 구성과 체계『조상경』의 구성과 체계를 19세기에 간행된 유점사(楡岾寺) 판본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유점사본은 용천사본을 바탕으로 누적된 오류를 수정하고 의식의 정확성을 확보하기 위해 전면적으로 개간된 판본으로, 조선 후기 복장의례의 전형을 확립하는 데 기여했다. 또한, 현재 복장의식의 소의(所依) 의례집으로 사용되고 있어, 이를 분석하는 것이 현행 복장의식의 흐름과 특징을 이해하는 데 가장 유용할 것으로 본다. 용천사본 『조상경』 「대장일람경 조상품 14칙」 수록면 (원각사 소장) 유점사본 『조상경』 「대장일람경 조상품 15칙」 ...
더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