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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은 유기

한글호은 유기
한자好隱有璣
유형인물
키워드호은집, 낙암 의눌, 해인사
시대조선 후기
출생1707년
입적1785년
해봉(海峯), 호은(好隱)
주요주석처해인사(海印寺)
조선 후기 낙암 의눌의 법맥을 잇고 『호은집』을 저술한 승려
18세기에 비슬산(毘瑟山)과 가야산(伽倻山) 해인사(海印寺)를 중심으로 활동한 승려로, 특히 화엄(華嚴)에 조예가 깊었으며 낙암 의눌(洛巖義訥, 1666~1737)의 법맥을 이었다. 『호은집(好隱集)』(또는 『해봉집(海峯集)』) 등을 저술하였다. 대사(大師)의 법명은 유기(有璣), 호는 해봉(海峯) 또는 호은(好隱)이다. 속성은 문화(文化) 유(柳)씨로 문간공(文簡公) 공권(公權)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의 이름은 옥(玉), 할아버지의 이름은 원(原), 아버지의 이름은 춘영(春英)이다. 어머니는 박(朴)씨이다. 대대로 관직을 역임해 온 집안인 것으로 추정된다. 1707년(숙종 33) 9월 14일 청주(淸州) 주안촌(周岸村)에서 태어났다. 9세에 속리산에 들어가 『소학(小學)』을 읽었는데, 한 스님이 대혜 종고(大慧宗杲, 1089~1163)의 책을 읽는 것을 보고 출가하기로 결심하였다. 15세에 판사 수공(判事秀公)에게 머리를 깎고, 16세에 무하 묘경(無瑕妙瓊)에게 계(戒)를 받았다. 이후 여러 산을 떠돌아다니며 학문을 배우다가 28세에 가야산에서 낙암 의눌을 만나 3년 동안 스승으로 섬긴 뒤 선교(禪敎)의 정수를 체득하고 그의 법맥을 이었다. 곧 법맥은 ‘청허 휴정(淸虛休靜, 1520~1604)-편양 언기(鞭羊彦機, 1581~1644)-풍담 의심(楓潭義諶, 1592~1655)-상봉 정원(霜峰淨源, 1627~1709)-낙암 의눌-호은 유기’로 이어진다. 의눌의 법을 이은 뒤, 1785년(정조 9)까지 약 48년 간(31~79세)의 활동은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대사가 남겨 놓은 글을 통해 단편적으로 유추해 보면 다음과 같다. 대사는 의눌의 법맥을 이은 직후인 31세에 개당(開堂)하여 승려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1760년대 전후, 즉 50대에는 가야산 해인사와 비슬산 소재 사찰들에 주석하며 후학을 양성하였고, 1770년(영조 46)경에는 해인사에 머무르고 있었다. 1771년(영조 47, 65세) 즈음에 사명 유정(四溟惟政, 1544~1610)의 영정이 안치된 해인사 홍제당(弘濟堂)을 중수하였다. 같은 해 표충사수호총섭(表忠祠守護摠攝)으로 임명받았다. 계속 해인사에 머무르다가 1785년(정조 9)에 그곳에서 입적하였다. 대사는 선교에 두루 능통하였고 특히 화엄에 조예가 깊었다. 말년에는 염불신앙의 확산에도 관심을 가지는 모습을 보인다. 저술로는 『호은집』, 「해인사사적비문(海印寺史蹟碑文)」 등이 있다.
· 집필자 : 불교백과1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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