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허정 법종 |
|---|---|
| 한자 | 虛靜法宗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허정집 |
| 시대 | 조선 후기 |
| 출생 | 1670년 |
| 입적 | 1733년 |
| 호 | 허정(虛靜) |
| 주요주석처 | 보현사(普賢寺) 등 |
조선 후기 설암 추붕의 법맥을 잇고 『허정집』을 저술한 승려
17세기 후반~18세기 초에 활동한 승려로, 설암 추붕(雪巖秋鵬, 1651~1706)의 법맥을 이었다. 『허정집(虛靜集)』(1732)을 저술하였다.
선사(禪師)의 법명은 법종(法宗), 법호는 허정(虛靜), 자(字)는 가조(可祖), 속성은 완산(完山) 전(全)씨이다. ‘허정’은 『도경(道經)』의 “더없이 덕이 높은 사람[至人]의 마음은 텅 빈 고요함을 잘 보존하고 물처럼 깊고 맑다(至人之心, 善保虛靜, 如水淵澄).”라는 구절에서 비롯하였다. 어머니 노(盧)씨가 용이 강림하는 꿈을 꾸고 1670년(현종 11) 초파일에 선사를 낳았다. 12세에 묘향산(妙香山) 옥잠(玉岑) 장로(長老)에게 출가하였다. 이후 도정 대사(道正大師)를 찾아뵙고 큰 깨달음을 얻으니, 대사가 “원돈법계(圓頓法界)가 이제 너에게 있다.”라고 하였다고 한다. 20세 즈음에 다시 묘향산으로 돌아가 월저 도안(月渚道安, 1638~1715)에게 대장경(大藏經)을 배웠다. 이후 도안의 제자인 설암 추붕에게서 깊은 가르침을 듣고 그의 법맥을 이었다. 법맥은 청허 휴정(淸虛休靜, 1520~1604)-편양 언기(鞭羊彦機, 1581~1644)-풍담 의심(楓潭意諶, 1592~1665)-월저 도안-설암 추붕-허정 법종으로 이어진다.
묘향산 보현사(普賢寺) 진상전(眞常殿), 내원암(內院庵), 조원암(祖院庵) 등에 두루 주석하며 낮에는 경전을 강의하고 밤에는 참선을 지도하였다. 1708년(숙종 34)에 초청을 받아 구월산(九月山)으로 갈 때는 제자가 100여 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그해 다시 묘향산으로 돌아와 말년까지 머무르다가 1733년(영조 9) 4월 17일에 세속 나이 64세, 법랍(法臘) 52년으로 남정사(南精舍)에서 입적하였다. 다비할 때 상서로운 빛이 하늘을 비추었고 영골 1편(片)과 사리 3과(顆)를 얻으니, 묘향산‧구월산, 그리고 해남 대둔사(大芚寺: 현 대흥사)에 탑을 세우고 나누어 봉안하였다. 또한 비를 세웠는데, 비명은 사간원(司諫院) 대사간(大司諫)을 역임한 이중협(李重協, 1681~?)이 지었다. 이중협은 선사의 제자인 추암 각성(楸巖覺性)의 지인으로, 칙명을 받고 영변(寧邊)으로 가던 중 우연히 만난 각성의 부탁을 받아 비명을 지었다고 한다. 현재도 「허정당법종대사비명(虛靜堂法宗大師碑銘)」 탁본이 남아 있다.
제자는 추암 각성, 명현(明顯), 보우(普愚) 등이며, 저술로는 보현사에서 개간(開刊)된 『허정집』이 있다.
· 집필자 : 불교백과1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