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허백 명조 |
|---|---|
| 한자 | 虛白明照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허백집, 송월 응상, 사명 유정, 허백당시집, 승가예의문 |
| 시대 | 조선 후기 |
| 출생 | 1593년 |
| 입적 | 1661년 |
| 호 | 허백당(虛白堂) |
| 주요주석처 | 보현사(普賢寺) |
| 비소재지 | 보현사(普賢寺) |
송월 응상의 법맥을 잇고,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 관서 지방에서 활약한 승려
선사(禪師)의 법명은 명조(明照), 당호(堂號)는 허백(虛白)이다. 속성은 이(李)씨, 속명은 희국(希國)이며, 아버지는 통정대부(通政大夫) 춘문(春文), 어머니는 신평(新平) 한(韓)씨이다. 1593년(선조 26) 11월 초구일에 충청도 홍주에서 태어났다. 13세에 승려 보영(普英)을 따라 묘향산(妙香山)으로 들어가 사명 유정(四溟惟政, 1544~1610)에게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이어서 현빈 인영(玄賓印暎)에게 선(禪)과 교(敎)를, 완허 원준(玩虛圓俊)에게 화엄대교(華嚴大敎)를 배우고, 송월 응상(松月應祥, 1572~1654)의 법맥을 이었다. 응상은 유정의 적자이니 법맥은 청허 휴정(淸虛休靜, 1520~1604)-사명 유정-송월 응상-허백 명조로 이어진다. 수행을 위해 지리산에 갔다가 다시 묘향산으로 돌아왔다.
1627년(인조 5)에 정묘호란(丁卯胡亂)이 발발하자 팔도의승도대장(八道義僧都大將)이 되어 관서 지방의 승군 4천여 명을 지휘하며 안주(安州)를 지켜냈다. 그 뒤 묘향산에 머무르다가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丙子胡亂, 1636~1637)이 일어나자 관서 지방 안찰사인 민성휘(閔聖徽, 1582~1647)의 청으로 의병장으로서 의승(義僧)과 관서 지방 관민을 동원하여 곡식을 모아 군량미를 보급하는 등 활약하였다. 그 공을 인정받아 조정으로부터 ‘가선대부 국일도대선사 부종수교 복국우세 비지쌍운 의승도대장등계(嘉善大夫國一都大禪師扶宗樹敎福國祐世悲智雙運義僧都大將登階)’라는 직첩을 받았다.
정세가 안정된 후에는 금강산과 지리산, 구월산(九月山) 패엽사(貝葉寺) 등지를 순례하며 불경을 강설하고 후학들을 지도하였다. 만년에는 묘향산 보현사(普賢寺) 불영대(佛影臺)에서 머물렀다. 하루는 묘향산 여러 암자를 둘러보고 우물물을 마신 뒤에 “나는 이제 가야겠다.”라고 말한 뒤, 보현사로 돌아와 임종게를 남기고 입적하였다. 이때가 1661년(현종 2) 9월 초팔일로, 세속 나이 69세, 법랍(法臘) 57년이었다.
제자들이 화장하고 사리 수십 과(顆)를 얻어서 보현사 서쪽과 금강산·보개산·구월산‧해남 대둔사(大芚寺: 현 대흥사) 등 선사와 인연이 깊은 사찰에 부도를 세우고 안치하였다. 1662년(현종 3)에는 제자 삼인(三印)·설해(雪海) 등이 영의정 이경석(李景奭, 1595~1671)의 글을 받아 보현사 부도 옆에 비를 세웠다. 그 외에도 의흠(義欽)·각흠(覺欽) 등 제자 수십 명이 있다. 저술로는 제자 남인(南印)이 간행한 시문집 『허백당시집(虛白堂詩集)』(혹은 『허백집』) 3권과 『승가예의문(僧伽禮儀文)』 1권 등이 있다.
· 집필자 : 불교백과1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