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함홍 치능 |
|---|---|
| 한자 | 涵弘致能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함홍당집, 고운사, 광흥사, 송암 의탄 |
| 시대 | 조선 후기 |
| 출생 | 1805년 |
| 입적 | 1878년 |
| 호 | 함홍(涵弘) |
| 주요 주석처 | 고운사(孤雲寺) |
조선 후기 송암 의탄의 법맥을 잇고 『함홍당집』을 저술한 승려
19세기에 활동한 승려로, 고운사(孤雲寺)에서 출가하여 송암 의탄(松庵義坦)의 법맥을 이었다. 문장이 뛰어났으며, 불경뿐 아니라 유학(儒學)에도 밝아 당대 사대부들과 시문을 주고받으며 긴밀히 교류하였다.
선사(禪師)의 법명은 치능(致能), 호는 함홍(涵弘), 자(字)는 운환(雲寰)이다. 속성은 김해 김(金)씨로, 아버지의 이름은 계운(戒雲), 어머니는 박(朴)씨이다. 1805년(순조 5) 안동 송천리(松川里)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13세에 숙부인 고운사 송암 의탄에게 출가하고자 하였다. 의탄은 곧 청허 휴정(淸虛休靜, 1520~1604)의 12세손이자 환성 지안(喚惺志安, 1664~1729)의 8세손이다. 의탄은 바로 출가를 허락하지 않고 유계초당(酉溪草堂)의 침간(枕澗) 김 선생에게 사서삼경과 제자백가 등을 배우라고 권유하였다. 1823년(순조 23)에 학업을 마친 후에야 정식으로 삭발하고 구담 전홍(九潭展鴻)에게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그 후에 혼허 지조(混虛智照)와 팔봉(八峯)을 차례로 찾아가 가르침을 받았다. 30세에 고운사로 돌아와 법당(法幢)을 건립하고 후학을 양성하였다. 1835년(헌종 1) 겨울에 소실된 운수암(雲水庵)을 중수하였다. 팔공산(八公山) 운부암(雲浮庵), 금학산(金鶴山) 금정암(金井庵), 청화산(靑華山)의 백련사(白蓮寺)에서 여러 차례 선사를 초청하였지만 모두 사양하였다. 고운사 외에 유일하게 주석한 사찰은 학가산(鶴駕山) 광흥사(廣興寺)였는데, 스승의 도량이었기 때문이다.
1878년(고종 15) 10월 16일 밤에 제자들에게 “문을 열어라. 내가 길을 떠날 것이다.” 하고서 세속 나이 74세, 법랍(法臘) 56년으로 입적하였다. 명(銘)은 방산거사(舫山居士) 허훈(許薰, 1836~1907)이 지었다. 1년 뒤에 제자인 야산 명원(野山明遠) 등이 유고를 수습하여 『함홍당집(涵弘堂集)』을 간행하였다. 『함홍당집』에서는 선사를 평생 꾸미는 태도가 없었다고 평하였다.
· 집필자 : 불교백과1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