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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계 현정

한글풍계 현정
한자楓溪賢正
유형인물
키워드완호 윤우, 일본표해록, 대흥사, 대둔사, 천불전, 천불상
시대조선 후기
출생미상
입적미상
주요주석처원효사(元曉寺), 대흥사(大興寺), 쌍봉사(雙峰寺)
19세기 초 대흥사 천불전 천불상을 조성하고 『일본표해록』을 저술한 화승
19세기 초 전라도 일대에서 활동하며 조계산 화맥(畵脈)의 한 축인 풍계현정파(楓溪賢正派)를 거느렸던 화승(畵僧)이다. 해남 대둔사(大芚寺: 현 대흥사) 천불전(千佛殿)에 봉안되어 있는 옥돌로 만든 천불상(전라남도 유형문화유산) 조성에 주요 인물로 참여하였다. 천불상을 만들어 대둔사로 돌아가던 중 풍랑을 만나 일본에 표류하였는데, 이때의 일을 기록한 『일본표해록(日本漂海錄)』(1821)을 남겼다. 대사의 법명은 현정(賢正), 호는 풍계(楓溪)이다. 처음에는 광주 무등산 원효사(元曉寺)에 있었으나, 1817년(순조 17) 완호 윤우(玩虎倫佑, 1758~1826)의 초청으로 대둔사로 옮겨 가 주석하였다. 당시 대둔사에서는 윤우를 화주(化主)로 하여 1811년(순조 11)에 불타버린 천불전을 중건하고, 그 안에 봉안할 천불상을 조성하는 불사(佛事)를 추진하고 있었다. 이에 대사도 천불상 조성을 위해 대둔사로 가게 된 것이다. 사료에 따라 대사가 대둔사로 간 시기와 천불상 조성에 걸린 기간이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천불상을 조성한 장소도 경주 기림사(祇林寺), 석굴암(石窟庵), 불석산(佛石山) 등 제각각이다. 하지만 대사가 1817년(순조 17) 가을에 대둔사 승려들과 함께 경주에서 옥석으로 천불상을 만든 뒤 바닷길을 통해 대둔사로 돌아가던 중에 풍랑을 만나 일본에서 약 7개월간 표류하였다는 사실은 공통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승려들은 다음 해 7월에 해남으로 돌아와 8월에 무사히 불상을 천불전에 봉안하였다. 이 일을 기록한 책이 『일본표해록』이다. 이 책을 저술할 때는 능주(綾州: 현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쌍봉사(雙峰寺)에 머무르고 있었다. 대사는 이후에도 천불전 중건 작업에 계속해서 참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대흥사에 걸려 있는 「대둔사 천불전 신중도(神衆圖)」(1819)도 대사의 작품이다. 이 외에도 1797년(정조 21)에 전라남도 고흥군 금탑사 극락보전 불상 개금(改金), 1826년(순조 26) 도장사(道場寺)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 제작 등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1829년(순조 29)에는 천불상을 조성하고 운반한 공덕을 인정받아 대흥사 표충원장에 임명되었다. 제자로는 원담 내원(圓潭乃圓)과 해운 익찬(海雲益贊), 인월 의관(印月義寬) 등이 있다. 조선 후기 화승들은 명산대찰을 중심으로 계보를 형성하였다. 전라도의 경우, 큰 사찰이 많은 조계산과 지리산에서 많은 명장이 출현하였다. 전라도 지역 사찰을 중심으로 활동한 불화승의 계보는 의겸파(義謙派), 금암천여파(金巖天如派) 그리고 풍계현정파로 분류된다. 대사가 형성한 유파는 19세기 전라남도 지역의 불화승을 대표하는 계파 중 하나였다. 또한 대사가 남긴 『일본표해록』은 당시 일본의 정치 상황과 풍속, 조선 인식, 표류민의 송환 절차를 기록한 귀중한 자료이다.
· 집필자 : 불교백과1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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