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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허 팔관

한글진허 팔관
한자振虛捌關
유형인물
키워드삼문직지, 진허집
시대조선 후기
출생미상
입적1782년
진허(振虛)
상월 새봉 계통의 법맥을 잇고 『삼문직지』와 『진허집』을 저술한 승려
18세기에 평안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청허 휴정(淸虛休靜, 1520~1604)-편양 언기(鞭羊彦機, 1581~1644)-풍담 의심(楓澹義諶, 1592~1665)-월저 도안(月渚道安, 1638~1715)-설암 추붕(雪巖秋鵬, 1651~1706)-상월 새봉(霜月璽封, 1687~1767)’으로 이어지는 법맥을 이었다고 추정되는 승려이다. 『삼문직지(三門直指)』(1769)와 『진허집(振虛集)』(1786)을 저술하였다. 법사의 법명은 팔관(捌關), 호는 진허(振虛)이다. 비문이나 행장(行狀) 등 그의 행적을 기록한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자세한 전기(傳記)는 알 수 없다. 김정중(金正中)이 1786년에 쓴 『진허집』 서문과 같은 책에 실린 시 등을 통해 법사의 행적을 조금이나마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이에 따르면 법사는 안주(安州)를 비롯한 평안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근차채번암상국(謹次蔡樊巖相國)」과 「평양천변수륙소(平壞川邊水陸疏)」를 통해 법사가 당시 평안도 관찰사였던 채제공(蔡濟恭, 1729~1799)과 교류하였으며, 1775년(영조 51)에 학질이 유행하자 그의 초청을 받아 평양에서 무차법회(無遮法會)를 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 연담 유일(蓮潭有一, 1720~1799)에게 보낸 시 「화연담운(和蓮潭韻)」 제목 옆에 달린 “법운산(法雲山) 상월 장로의 강석에서 함께 지낼 때이다(同居法雲山霜月長老講下時也).”라는 설명으로 법사가 법운산에서 열린 새봉의 강석에서 유일과 함께 공부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외 새봉의 행장, 법사가 지은 소문(疏文) 등에서 그의 교우 관계와 행적이 단편적으로 확인된다. 『진허집』 서문에서 “법사가 입적한 지 4년이 지나 그 제자인 보철(普喆)이 유고를 수습하고 나에게 서문을 부탁하였다.”라고 하였기에, 법사가 입적한 시기는 1782년(정조 6)경으로 추정한다. 『진허집』은 당시 평안도 지역의 사찰들에 관한 정보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삼문직지』 또한 조선 후기 삼문 수행(三門修行: 선‧교‧염불을 차등 없이 수행하는 방법)이 유행하던 경향을 적극 반영하고 있어, 그 시대의 불교신앙과 불교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 집필자 : 불교백과1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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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논문 정헌열 | 동아시아불교문화 | 39 |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 2019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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