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눌봉 정기

한글눌봉 정기
한자訥峯正基
유형인물
키워드금명 보정, 용선, 송광사
시대조선 후기~일제강점기
출생1869년
입적미상
눌봉(訥峯)
주요 주석처송광사(松廣寺), 도림사(道林寺) 등
조선 후기~일제강점기에 활동하며 용선의 법맥을 이은 선사
19세기~20세기 초에 활동한 승려로, 순천 송광사(松廣寺) 월송 대사(月松大師)에게 출가하고 초우(草雨)에게 계(戒)를 받았으며, 용선(龍船) 법사의 법맥을 이었다. 일제강점기 송광사 부휴계(浮休係) 법맥을 계승하고 수많은 저술을 남긴 금명 보정(錦溟寶鼎, 1861~1930)의 사제이다. 선사(禪師)의 법명은 정기(正基), 호는 눌봉(訥峯)이다. 속성은 이(李)씨이며, 아버지 이름은 재석(載石), 어머니는 완산 이씨이다. 1869년(고종 6) 7월 11일에 순천 낙호리(洛湖里)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뛰어난 소질을 보였고 글씨를 잘 썼다고 한다. 13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나자 어머니가 아들을 불쌍히 여겨서 출가를 허락하였다. 15세가 되던 해인 1883년(고종 20)에 순천 송광사 월송 대사에게 출가하였다. 초우에게 계를 받아 정기라는 이름을 얻었고, 원해(圓海) 밑에서 경전을 익혔다. 1886년(고종 23)부터 7, 8년 동안 경운(擎雲, 1852~1936)‧월화 인학(月華仁學, 1826~1894) 등 교학에 밝은 승려들을 찾아다니며 삼장(三藏: 경‧율‧논)을 다 열람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담화 대덕(曇華大德)에게 범패(梵唄)를, 대붕 선사(大鵬禪師)에게 범자(梵字)를 배웠다. 1897년(고종 34) 겨울에 송광사 보조암(普照庵)에서 건당(建幢)을 하고 용선(龍船) 법사의 법맥을 계승하며 ‘눌봉’이라는 호를 받았다. 보정이 전강(傳講: 후학에게 강맥을 전수하는 것)을 주었다. 이후 거침없는 언변으로 대중에게 설법을 하며 명성을 떨쳤는데, 화엄법회‧법화법회‧정토법회 등 초청되지 않는 곳이 없었다. 가장 유명한 것이 1899년(고종 36)에 해인사(海印寺) 장경법회(藏經法會)에서 설법을 하며 벌인 논쟁이다. 그 외에도 무등산(無等山) 지장암(地藏菴) 석실과 모후산(母后山) 송광대(松廣臺) 병풍암(屛風巖) 등과 같은 토굴을 짓거나, 『화엄경(華嚴經)』을 사경하는 등 활발히 활동하였다. 해남 대흥사(大興寺, 1915), 경기도 화장사(華藏寺, 1916), 무등산 지장암(1917), 도림사(道林寺, 1919) 등에 두루 주석하였다. 특히 도림사 주지를 하면서 황폐해진 사찰을 크게 중수하였는데(1920), 지역 사람들이 창건주가 도래했다고 말할 정도였다고 한다. 『다송문고(茶松文稿)』 권2에 수록된 「도림사 대법당 상량문【8월 20일】(道林寺大法堂上樑文【八月二十日】)」에 관련 내용이 실려 있다. 1925년에는 길상암(吉祥庵)에 주석하면서 불상을 보수하였고, 1929년 봄에는 완산포교당(完山布敎堂)에 머물렀다. 같은 해 가을, 길상암에 머무르면서 보정과 함께 결사를 하여 백일정토산림(百日淨土山林)을 수행하자 신도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입적한 해는 알 수 없다. 선사의 전기를 수록하고 있는 『조계고승전(曹溪高僧傳)』을 편찬한 보정이 1930년에 입적하였기에 이후의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탓이다. 『다송문고』에 수록된 「『화엄경』 사경 발문【8월 15일】(寫華嚴經跋【八月十五日】)」에서는 선사를 “재주가 뛰어나지는 않지만 신앙은 절륜하며, 필체는 빼어나지 않지만 설경(說經)은 출중하고, 외모가 놀라울 정도는 아닌데 계율은 타인을 압도한다.”라고 평가하였다.
· 집필자 : 불교백과1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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