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해운 경열 |
|---|---|
| 한자 | 海運敬悅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소요 태능, 대둔사, 대흥사 |
| 시대 | 조선 후기 |
| 출생 | 1580년 |
| 입적 | 1646년 |
| 호 | 해운(海運) |
| 주요주석처 | 대흥사(大興寺) |
16~17세기에 활동하며 소요 태능의 법맥을 이은 선승
16~17세기에 활동한 선승(禪僧)으로 소요 태능(逍遙太能, 1562~1649)의 법맥을 이었다. 『만덕사지(萬德寺志)』에서는 선사(禪師)를 만덕사(萬德寺: 현 백련사) 조선 8대사 중 제1조인 태능의 뒤를 이어 제2조로 추대하였으나, 만덕사와의 큰 연관성은 보이지 않는다.
선사의 법명은 경열(敬悅), 호는 해운(海運)이다. ‘해운’과 ‘소요’는 모두 장자(莊子)가 지은 『남화경(南華經)』 「소요유(逍遙遊)」에 나오는 단어이다. 해운은 ‘붕새가 남쪽 바다로 옮겨 간다’라는 의미이며, 붕새가 남쪽 바다로 옮겨 간다는 것은 ‘유유히 소요(逍遙)한다’라는 뜻이다. ‘해운’은 소요 태능과 선사의 전법(傳法)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태능의 문도는 수백 명이나 있지만 오직 선사만이 그의 종통(宗通)을 이었기 때문에 그런 호를 받았다고 한다. 『동사열전(東師列傳)』 권2에 수록된 태능의 전기(傳記)에서는 태능의 선종(禪宗)을 전수받은 제자는 침굉 현변(枕肱懸辯)이고, 교종(敎宗)을 전수받은 제자는 해운 경열이라 하였다.
선사의 성씨와 고향, 행적 등은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홍기섭(洪起燮, 1776~1831)이 지은 「해남 대흥사 해운당 경열대사비문」(1814)에 “해운 대사가 입적한 지 벌써 169년이나 지났는데, 그의 성씨와 고향은 고증할 수 없다. 다만 아암 혜장(兒庵惠藏, 1772~1811)이 일찍이 대사의 문중에서 옛 기록을 보았다고 하였다.”라며 다음과 같은 일화를 전하고 있다. “1607년(선조 40)에 청련 원철(靑蓮圓徹)이 해남 대둔사(大芚寺: 현 대흥사)에서 큰 법회를 열었을 때 태능이 참석하였는데, 이 해에 선사가 태능의 법맥을 이어받았다. 이때 선사의 나이 28세였으며, 67세에 입적하였다.”
비문 등에서는 이 일화를 통해 선사의 생몰년을 유추하였다. 청련 대사가 법회를 연 해는 1607년(선조 40) 겨울이다. 따라서 선사는 1580년(선조 13)에 태어나 1646년(인조 24)에 입적하였다. 선사의 명(銘)은 다음과 같다. “붕새의 큰 날개 남쪽 바다 옮겨 갈 때/ 파도는 삼천리를 치고 난다.// 해운이 아니면 뉘라서 저리 놀까?/ 이 뒤로도 그의 법 전해지되// 흐르는 별, 폭죽처럼 터져서/ 드넓은 하늘에 광명이 찬란하네// 진리의 등불 여섯 번 켜지더니/ 마침내 정암과 연파에 이르렀네// 진실로 진리를 찾고자 하면/ 문집에 새긴 글을 보아라.” 선사의 법을 이은 제자는 17명이 있다. 그중에서 가장 뛰어난 자는 취여 삼우(醉如三愚, 1622~1684)이다.
태능은 선사의 가슴속에 있는 법해(法海)가 넓고 깊어서 예측하기 어렵고, 글 속의 현묘한 뜻은 헤아리기가 어렵다고 평하였다. 『소요당집(逍遙堂集)』에 태능이 선사에 관하여 읊은 시와 게송이 실려 있다.
· 집필자 : 불교백과1팀





